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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려말 사대부를 이색 계열의 구법파 사대부와 정도전 계열의 신법파 사대부로 나눈다. 다소 도식적이지만 고려말 사회개혁의 방향을 두고 갈등한 대표적 인물이 이색과 정도전임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비교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색 계열은 주자학적 정치관을 따르면서도 주자학 이념을 이용해 고려왕조를 유지하고자 했다. 아마 이는 당시 정계에서 이색 계열의 구법파 사대부들이 정도전 계열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이들은 좌주문생제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유지하고자 했다. 비록 북원 사신 접대에 대해서는 반대하였지만, 이는 명분론적 화이관의 영향보다는 형세론적으로 명이 북원에 우세를 점하고 있기에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이었다. 


전제개혁에 있어서도 이색은 수조권자가 여러 명인 상황을 개혁하여 일전일주(一田一主)의 상태만 회복한다면 민의 생활이 안정될 것이라고생각하였다. 


따라서 이색 계열 사대부는 민의 교화나 구휼 역시 사대부가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이색은 주례를 참고한 주관육익을 저술하면서 주례 제도에 입각해 고려의 구법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반면 정도전 계열 사대부는 불교 자체를 완전한 이단으로 규정하고 급진적 제도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들 역시 주례를 강조하였으나 이는 고려의 구체제 수호가 아닌 신체제를 위한 규범의 성격이 강했다. 


정도전의 사상은 주자학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그 실천 방향은 이색에 비해 훨씬 급진적이었다.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당적 천명관을 이용해 이성계의 추대를 합리화시키는 등, 새로운 권력 기반의 창출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구법파 사대부가 신법파 사대부에 비해 대체적으로 정치적, 혈연적 우위를 점했고, 성리학의 수용기였기에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지 않아 사상적 변용이 있던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고려 말의 사대부층 분화는 당시 이들의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 하에서 성리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책이 도현철의 박사학위논문을 기반으로 하여 1990년대에 출판되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더욱 많은 당시 연구성과들을 찾아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