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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격의 거인이 충격적인 대사를 포함한 엔딩이 출간된지 벌써 3개월이 넘었다. 나도 월간독갤에 글하나 올려보고 싶어서 써본다. 비문학에도 '영원회귀의 신화'로 하나 쓰고 싶었는데 동생새끼가 씨발 시끄럽게 게임을 쳐해대서 읽는데 집중이 안된다.



 내 기억으로 2012년도에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이 유행이었다. 그때부터만 치더라도 9년이 넘는 장정을 거쳐 올해 8월 한국에서 마지막 권이 출판되었다. 난 진격의 거인이 긴 연재기간, 작중 시간에 비해서도 타 장기연재만화 보다 월등히 박진감 있는 전개속도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장기연재 만화들은 고전적인 클리셰를 따라가고, 단기 연재에 비해 충실한 빌드업을 가진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은 클리셰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처음 유행했을때도 신선하다는 반응이었던 걸로 생각한다. 진격의 거인이 이렇게 박진감있는 체감전개속도를 보여주며 클리셰적이지 않은 전개양상을 보이는 건 비교대상이 일본의 소년만화이기 때문이며 이들과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만화는 '소년만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나는 진격의 거인과 가장 유사한 작품을 고르라고한다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라고 생각한다. 의인화된 사상간의 치열한 사투, 그것이 진격의 거인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조금씩 뜯어보자.



 진격의 거인의 스토리를 크게 나눠보면 엘런 일행과 지크, 그리샤, 베르톨트의 싸움을 기준으로 그 전을 1부, 후를 2부로 또다시 1부를 애니 포획을 기분으로 전반부, 후반부로 2부도 엘런의 시조와의 접촉을 기준으로 전반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이후 순서대로 1~4로 지칭) 각각 스토리의 큰 흐름이 바뀌는 지점이다. 애니 포획을 기점으로 단순히 거인에 대항하는 인간이 아닌 거인인 인간, 내부의 적에 대한하게 되고 그리샤와의 싸움을 기점으로 팔라딘 섬을 나와 인간과의 싸움이 시작한다. 엘런이 시조와 접촉한 후로는 모든 일류가 엘런을 저지하기 위해 싸운다. 시점에서도 그 흐름이 바뀌는 걸 알 수 있는데 1,2에선 엘런의 시점이 많았다면 3,4에서는 엘런의 시점으로 보는 부분은 거의 없다. 만화가 철저히 1인칭을 고수할 이유도 필요성도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점으로 보기때문에 이야기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할 수록 당연한 것이지만 3.4에선 의도적으로 엘런의 시각을 배제한다. 이는 비겁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좀 뒤에서 하도록 하자.



 1은 참 소년만화스럽다. 엘런은 지금의 상태에 불만이 많다. 그러다 재앙이 찾아왔다. 그를 이겨내기 위해 성장을 거듭한다. 동료도 얻는다. 그러다 싸우고 패하고 죽고 살아나며 잠든 힘을 깨운다. 고전적인 신화속 영웅상에 완전히 부합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읽을 것이다. 엘런은 순수한 자유 그 자체다. 억압되어있는 현상에 불만을 가지고 이를 타파하려는 조사병단에 열광한다. 엘런은 압재적 현실(벽속의 인류)을 억압하는 압재자(거인)를 구축하는 순수한 자유다. 미카사는 이제까지처럼 앞으로도 쭉 한결같이 사랑이다. 아르민은 용기다. 아르민은 패거리들에게 맞으면서도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가슴 속 꿈을 생각하면 끌어오르는 무한한 용기다. 이 세명이 가장 중요하며 강한 인간의 본질적인 사상이다.(작품 내적으로) 앞으로 언급할 등장인물들도 단순한 비유를 들어 표현할 수 있다.


 현상황을 살펴보면 그 구조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자리잡는지가 보인다. 일단 팔라딘 섬의 인류란 레이스왕가의 기억조작에 의해 과거의 역사를 잊고 섬에서 여생을 기다리는 시한부다. 이 섬은 사람으로치면 어린이처럼 때쓰고 싶어 만들어진 무의식이고 신화적으로 풀면 에덴의 동상으로 돌아가고파 원시인으로 회귀한 아담이다. 1에서 엘런-자유, 아르민-용기, 미카사-사랑을 필두로 사샤-본능적 욕구, 라이너-방황, 애니-평안함 등이 등장하며 함께 성장한다. 이들은 바깥으로부터의 압재자와 싸운다. 그들은 조사병단에 들어간다. 조사병단은 자유와 용기의 결합이다. 그속엔 리바이-폭력, 한지-호기심, 엘빈-의지가 있다. 이들은 자유의 이름으로 용기있게 명예로운 일을 하기 때문에 외부의 적과 싸울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적을 만난다. 바로 엘런처럼 거인이 될 수 있는 인간, 애니를 포획하게 된다. 그럼으로 처음 엘런의 힘이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란이 생긴다. 그리고 2에서 더 중요한 일이 생긴다. 바로 내부의 적이다. 섬을 퇴행적 에덴의 동산으로 만든 내부의 압재자를 처리하러 간다. 외부에 대항하기 전에 내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유미르-가식의 정체를 알게 되기도 하고 케니 같은 등장인물도 있지만 퇴장이 빠른 것처럼 중요도도 크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여기서 엘런이 여왕으로 즉위한 히스토리아를 통해 왕가의 피와 접촉한 것이다. 왕가의 피를 통해 절대적 존재자와 접촉한 엘런은 여기서부터 변화한다. 내부의 적을 처단한 다음 힘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내부에서 외부로 나아가야한다. 그것을 막고 있는 그리샤-죽음의 유혹을 무녀트려야 한다. 여기서 조사병단은 엘빈-의지를 잃는다. 하지만 조사병단이 남아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물론 방향에서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3의 시작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마레의 전사후보생 가비와 팔코-우정로 마레라는 팔라딘 섬 입장에선 외부의 압제자의 입장을 보여준다. 가비가 조금 했갈리는데 가비는 섬의 엘디아인을 악마화하는 마레의 선전에 완전히 빠져서 그대로 믿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이 옳은지를 생각하는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특정한 사상에 비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주인공의 자리를 가져갔어야하지 않았나 싶다. 엘런은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외부의 압제자를 구축하면서 그들의 힘을 빼았는다. 그리고 팔라딘 섬으로 되돌아와 그리샤를 통해 왕가의 피와 접촉하여 시조의 거인의 힘을 발동시킨다. 중간에 있던 일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가비에 의해 사샤가 죽은 건데 이 죽음이 있었기에 사샤는 온전한 본능적 욕구로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자기 내부적으로는 본능적 욕구가 활개쳐도 상관 없지만 그것은 분명 문명인의 방식이 아니다. 또 엘런이 미카사에게 심한 말을 하고 아르민을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럼에도 엘론-자유는 아르민-용기를 굴복시키지도 미카사의 사랑을 꺽지도 못한다. 히스토리아와의 접촉이후 이 시점에서 이미 엘런은 자유를 위한 자유, 맹목적인 자유가 되어버렸다. 스스로 자유롭다는 속박에 갖쳐 그 어떤 압제도 거부하겠다를 넘어 모든 압제의 구축으로 그 순수하던 의미가 변질되었다.



 팔라딘 섬 외의 인류를 멸망시키려던 엘런을 막으려하는 건 결국 그와 같은 엘디아 인이었다. 물론 팔라딘 섬 밖의 사람들도 싸우지만 그들은 싸움의 주를 이루지는 못한다. 외냐하면 엘디아 인들은 팔라딘 섬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엘디아 인이고 이는 그들이 원래 하나였기 때문이다. 시조 유미르로부터 갈라져나온 거인의 심과 같은 사상의 사투. 그들은 무얼 위해 싸우나? 진격의 거인은 2부에 들어서면서 진부한 정치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야 당연히 3초반에도 문명의 무기가 거인의 힘을 능가하기 시작했으며 전쟁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진격의 거인이 겨인 대 거인의 싸움을 해야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의인화된 사상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면 어떻게 되나? 서로 다른 신을 모시는 집단간의 싸움에서 진쪽은 이긴쪽의 하위신이 되어 신화에 편입된다. 엘런에게 대항하는 이들은 말그대로 성전을 치르는 것이다. 그들은 싸움의 승패로 신이 인간에게 있어 가질 수 있는 돋보적인 위치, 즉 모든 것의 의미를 부여하는 자가 될 수 있다.

  표면적인 싸움의 목적은 팔라딘 섬 이외의 멸절과 그를 막는 것이었지만 실재로는 상징 체계속에서 상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열쇠가 되는 것은 시조 유미르와 '길'이다. 유미르는 노예의 신분으로 돼지를 풀어준 죄로 사냥당해 죽을 위기에서 거인의 힘을 얻어 프란츠왕의 아내가 되었다. 길이란 거인이 될 수 있는 민족 엘디아 인들을 연결해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연결을 의미한다. 이 길 속에서 죽은 자와 소통할 수도 과거를 바꿀 수도 있다. 엘런은 길에서 유미르를 만나 노예로써 모래로 거인을 빚던 그녀에세 생전의 자유를 일깨워주고 시조의 힘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싸움이 한창이던 중 아르민은 죽을 위기에 길에서 그리샤와 만난다. 그리샤와 대화에서 아르민은 엘런, 미카사와의 추억을, 그리샤는 캐치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의미 그자체인 신이 의미를 생각한다라? 해석에 의한 것이지만 굉장히 메타적이다. 어찌됬는 싸움은 엘런의 패배로 끝난다. 당연히 팔라딘 섬 외의 인류 멸절이라는 엔딩은 작가에게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복병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싸움의 열쇠는 유미르와 길이지만 마스터 키는 미카사였다. 마카사는 엘런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로 고민했다. 하지만 결심하고 엘런의 목을 잘라 어릴적 엘런이 낮잠자던 나무 아래에 묻어준다. 미카사는 유미르를 만나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오직 엘런만을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미르가 거인의 힘으로 신이 된 것 처럼 미카사도 엘런의 목을 베어 싸움을 끝냈다. 유미르는 자유를 원하고 힘을 얻었음에도 어째서 자신을 노예로 부리며 죽이려하던 프란츠 왕의 부인으로 살았는가? 그녀가 프란츠 왕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프란츠 왕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 이 싸움이 전형적인 소년만화 였다면 미카사는 철저하게 나루토의 히나타 자리를 가져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다. 단 한 순간도 미카사는 엘런에게 지지 않는다. 어릴때도 연습생때도. 그런 미카사가 엘런을 죽이고 성전에 이겨 삶의 의미를 가져가는 건 참 당연한 결말이 아닌가 싶다. 



  요약해보자면 파라딘 섬은 내면세계, 그 밖은 외부, 등장인물들은 의인화된 사상으로 그들이 싸워 삶의 의미를 차지한 건 미카사-사랑이었다. 죄와 벌에서 로쟈와 소냐의 대립이 허무주의적 초인과 전통적 근본질서의 대립이었다면 진격의 거인에서의 대립은 모순에 빠진 자유에 대한 파괴적인 열망과 다른 것들의 대립이다. 자유는 내명세계에서 외부로 향할 수 있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 순수함이 변질되어 버렸다. 다른 것들은 온건하게 답을 찾으려 했지만 하나, 하나의 힘은 그리 강하지 못했고 그 중에 가장 강한 사랑이 자유를 누르고 이겼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 그리샤와 조사병단(주로 엘빈)의 대립이라든가 사샤를 끔찍히 생각하는 코니-유아적 본능의 관계 같은 것들도 있다. 전자는 죽음의 욕구도 의지를 꺾을 수 없다 정도로 하고 후자는 상징하는 것만 봐도 답이 보인다. 나는 쓰인 것보다 읽히는 게 많다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만화라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이미 많은 사람이 한번쯤은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이 군국주의라느니 제국주의, 대량학살 미화라느니 하는 평가가 나오는 건 마땅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수십억명 죽여줘고 고마워'는 작가 실수한 게 아닌가 싶다. 난 그렇게 믿는다. 그게 만약 그냥 고마워였다면 본문에서도 다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