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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조, 정조 대의 탕평에 관하여 연구성과를 모은 이종의 논문집이다. 영조 대에는 탕평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특히 영조는 자신의 탕평책에 동의하는 탕평파를 중심으로 정국을 이끌어나갔다. 이들은 균역법 시행이나 속대전 편찬 등을 돕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경종에 대한 영조의 혐의를 벗고, 영조의 즉위를 확실히 한 신임의리를 공식화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영조 탕평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임오화변이었다. 이후 홍봉한, 홍인한, 김귀주, 정후겸 등 척신 세력은 서로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하였고, 세손의 지위가 불안해지기에 이르렀다.
영조의 신뢰와 홍국영, 정민시 등의 활약으로 즉위한 정조는 자신을 위협했던 정후겸, 홍인한 등을 제거하고, 명의록을 편찬하여 자신의 즉위 의리를 공인하였다.
1990년대에 쏟아진 정조 탕평 연구는 도식적 측면과 왕권 강화라는 측면에 주목했지만, 정조 어찰첩이 발견되고, 탕평정치에 대한 연구가 축적된 2010년대부터는 정조의 탕평을 단수한 왕권 강화 차원이 아니라 여러 정파들과의 치열한 의리 논쟁을 통해 점점 정국을 유리하게 바꾸어나가려는 정조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파의 역동성에 주목하였다.
확실한 것은 영. 정조 모두 즉위 과정과 집권 과정에서 수많은 굴곡을 겪었으며, 이러한 굴곡은 그들의 정치력에도 반영되어 일견 사분오열되어있는 각 당파와 사론(士論)을 자신의 정책 목표에 맞추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순조는 즉위 당시 너무 어렸던 데다 1800~1806의 정국 변동 속에서 정치력을 기르지 못하고 본인 스스로도 정무에 대한 의지를 점점 잃어버리며, 군주의 탁월한 정치력을 전제했던 탕평정치는 소수 가문 중심의 세도정치로 변질된 것이었다.
상편과 하편을 종합해 보면 점점 탕평을 보는 사안이 다각화되고, 연구자들 사이의 이견도 많아짐을 알 수 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동시에 후대의 영. 정조대 정치사 연구자들에게 이를 재해석하여 새로운 논의를 도출해내야 하는 새롭고도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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