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독갤의 핫한 작가 김사과이다. 상당히 폭력적이었던 염소의 축제를 읽고 나서 so doooooㅐㅐㅐㅐpe한 작가인 김사과의 영이를 바로 읽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다소 지쳐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칸예 웨스트의 앨범 'Ye'를 들음(특히, 'Ghost Town'과 'Violent Crimes'가 도움이 됐다)으로써 정신적 평온과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영이', 이는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의 이름이고 이외 7개의 단편을 합쳐 총 8편의 작품이 담겨있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을 골라서 줄거리를 정리한 뒤, 후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밑에 정리는 좀 길고 스포일러이니 넘기고 싶으면 바로 감상으로 넘어가자.




1. 영이


 영이는 영이인 동시에 영이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영이에게는 요정과 같은 또 다른 영이가 따라다닌다. 마치 그림자 같이. 영이는 영이에게 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즉, 현실에 존재하는 영이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영이(순이)가 겪는 이야기이다.


 영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 아빠는 알콜중독자이고, 엄마는 우울증 환자이다. 영이는 순이와 함께 방에 틀어박혀 우는 수밖에 없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엄마의 뺨을 때리고 배를 차고 쌍욕을 내뱉는다. 이럴 때, 영이만의 현실도피법이 있다. 영이와 영이의 몸을 분리하는 것이다. 영이는 울고 있는 영이의 몸을 바라본다. 그러면 영이의 마음은 편해진다. 영이의 몸은 영이의 몸이지 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이와 영이의 몸, 순이 세 명은 방에 틀어박혀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가끔 순이를 끌어안으며 견디기도 한다.


 하루는 엄마와 아빠, 둘 중 한 명이 죽을 것만 같은 싸움이 벌어졌다. 아빠는 엄마를 흠씬 패고 나서 마당에 있는 감나무로 가 담배를 핀다. 엄마는 잠시 후 아빠를 따라나간 뒤, 삽으로 머리를 후린다. 아빠는 개 같은 신음소리 같다. 엄마는 외친다.


 "개새끼가 정말로 개가 됐네!"

 "개새끼가 정말로 개가 됐네!"

 "개새끼가 정말로 개가 됐네!"


 영이는 뒤따라가 그 풍경을 바라본다. 아빠는 정말로 개가 돼있었다. 피투성이 개가 엄마 앞에 누워있었다. 그런 영이를 노을이 집어삼킨다.




2. 정오의 산책


 '한'은 회사원이다. 그는 할머니 '정', 할아버지 '회'와 함께 산다. '한'의 회사는 치과 관련 기구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중소기업으로, 그는 중국 수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함께 근무하는 '페터'라는 독일인과 '윤'을 싫어한다. '페터'는 안부인사를 경쾌하게 하고 함박웃음을 짓기 때문이다. '윤'은 '페터'와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은 점심시간에 홀로 샌드위치 가게로 나선다. 그곳에서 '페터'와 '윤' 그리고 다른 동료 직원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합석한다. 그리고 윤을 울려 분위기를 씹창낸 후 가게를 나와 산책에 나선다. '한'은 신호등을 기다리다 빌딩 너머로 비행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건너편 한 아이가 손에서 놓친 빨간 풍선을 바라본다. 그 순간 '한'은 일종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제 '한'은 사물과 인간과 그것을 감싼 모든 힘과 자신과 세계와 모든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그들의 고통까지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 모든 것에서 질서와 조화를 느껴 마음이 정화되어 기쁨을 느꼈다. 동시에 사람들의 고통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기에 슬픔도 느꼈다. 그렇게 그는 한 눈으로는 웃고 한 눈으로는 울며 회사로 돌아갔다.


 사무실에서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종이, 연필, 낡은 포스트잇 등등이 사랑하는 연인처럼 풍부한 감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은 조퇴를 쓰고 퇴근한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려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은 어떤 문장을 되뇐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한'은 도시의 모든 사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느끼며 '정'과 '회'가 있는 집에 도착한다. 그들은 자고 있다, 죽은 듯이. '한'은 설1거지(ㅅㅂ금칙어)를 하려다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손에 올려 가지고 논다. '한'은 할머니 '정'을 깨운다. 그녀는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른다. 미소짓는 '한'의 목으로 바퀴벌레는 타올라가 머리카락으로 들어간다. 할아버지 '회'도 잠에서 깬다. '한'은 그들에게 무엇을 내뱉는데, 그것은 말이 아닌 어떤 것이다. '정'과 '회'는 두려움에 떤 채 두 손을 맞잡는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그들의 눈은 '한'의 입을 떠나지 않는다.




3.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나는 회사 동료인 A의 엉덩이를 찢어 뼈를 뽑아낸 후, 회색 안경에 쑤셔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분노는 어디에서 왔는지 자문한다. 회의를 마치고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골목 사이의 허름한 국밥집으로 간다. 설1거지(ㅅㅂ금칙어2) 하는 국밥집 주인의 뒷모습에서 화가 난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간 뒤, 도마의 칼을 집어 목을 벤다. 뒤를 돌아보니 문에 한 사람이 서 있다.


 한 학생이었다. 학생은 아직 부엌의 상황을 모르는 듯 하다. 학생은 백반을 시킨 후 자리에 앉고, 나는 태연하게 사이다를 따라준다. 소년은 자신이 가난해서 정부의 혜택을 받고있기에 싸게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화가 난다. 소년의 가정 상황과 의견을 비난하다 결국 맥주병으로 소년의 대가리를 후려친다. 그렇게 소년도 죽었다.


 나는 그대로 집으로 갔다. 엄마와 아빠와 누나가 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방에 잠시 누워있다 거실에 나가니 가족들의 모습이 어째 이상하다. 무언가 숨기는 듯하다. 밥을 차려 먹는다. 어머니는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나약하다고 비판한다. 어쩐지 나는 개처럼 짖고 싶어진다. 누나는 돼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 말한다. 나는 결국 못 참고 말한다.


 - 저 오늘 사람을 죽였어요.


 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다며 엄마와 부부싸움을 하고 누나는 자신이 돼지가 되어가기 때문에 너무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은 끝이 난다. 이후 아버지는 어머니와 수면제 이야기를 하는 나를 노려본다. 아버지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며 나에게 다가와 뺨을 때린다. 부자는 서로의 뺨을 계속해서 때린다. 아버지가 나의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나는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못 했기에 사람을 죽여버렸다며 후회한다.


 나는 쓰러진 채 아버지의 다리를 움켜잡아 넘어뜨린다. 그리고 아버지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고 가 아버지의 윗몸을 텔레비전에 박아넣는다. 그러자 뒤에서 어머니가 나를 꽃병으로 가격한다. 나는 쓰러졌고, 엄마가 다시 꽃병을 내려칠 때 손목을 잡아 부러뜨린다. 엄마는 비명을 지른다. 이윽고 나는 꽃병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터뜨린다. 그렇게 둘 다 죽어버렸다. 나는 여전히 분노로 가득했다. 누나는 이미 돼지가 되어 식탁에서 게걸스럽게 반찬을 헤집고 있다. 나는 공포로 가득찬 누나에게 다가가 그녀가 돼지의 손으로 건네주는 뭉개진 생선 살을 먹는다.



<감상>


김사과의 소설은 폭력적이다. 하지만 화자는 그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헤맨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분노를 풀어야만 하기에 화자는 가장 극단적이며 격렬한 폭력을 시전한다. 그래도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결국에는 자기파멸적인 꼴이 되거나 우스꽝스러워진다. 나는 김사과의 소설이 일종의 부조리 블랙 코미디라 생각한다. (부조리 함부로 붙이지 말라고? 미안)



 사람은 자신에게 쌓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그것을 풀어내야만 하고, 그런 과정에서 김사과가 특히 비판받는 점인 '뇌절'이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와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의 뇌절이 김사과의 소설을 빚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코미디가 된다.



 '영이'는 김사과의 데뷔작이라서 흥미로웠다. 그녀는 시작부터 폭력적이었고 실험적이었다. 각자가 지닌 분노로 붕괴된 가족이 어떻게 나름의 도피처를 찾는가에 대한 소설 같았다. 영이는 순이를 만들어내서 도피했고, 아빠는 술과 폭력으로 도피했고, 엄마는 아빠를 삽으로 죽이면서 도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분노는 끝난 것 같지 않았다. 엄마는 감나무 아래 주저앉아 정신 나간 웃음을 지으며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고, 영이는 피투성이가 된 스스로를 상상하며 노을에 집어삼켜졌기 때문이다. 어느 것도 해소되지 않고 회복되지 않은 듯한 씁쓸한 엔딩이다.



 '정오의 산책'은 김사과 단편들에서 극단적인 폭력이 실행되기 전의 상황을 그려낸, 일종의 프롤로그와 같은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분노로 가득찬 '한'은 일종의 계시를 받고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해서 기쁜 동시에 모든 것들의 고통도 느껴져 슬펐다. 따라서 모든 게 무의미하다 느끼며 회사를 뛰쳐나오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내뱉는다. 그것은 자신의 깨달음일지도 모르고(앞부분에서 '한'이 깨달은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묘사된다), 단순한 쌍욕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걸 듣고 있는 노부부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방언이 끝난 뒤, '한'은 노부부를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사물의 미래를 알고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면 움직일수록~'은 김사과 소설의 전형이라고 여긴다. 해소되지 않는 분노, 극단적인 폭력, 우스꽝스러움. 김사과 소설의 에센스가 명확하게 그려지고 있다. 소설 속 나는 모든 것에서 분노를 느끼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대상을 제거한다. 그래도 분노는 해소되지 않는다. 그가 살해하는 상상이나 실제로 죽이지 않는 유일한 대상은 '누나'이다. 누나는 저녁을 먹으며 내 안부를 물어봐 주었다. 돼지가 되어서도 나에게 생선 살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그런 누나조차 자기 혐오감으로 돼지가 돼버려 추악해져버렸다. 걸신이 들린 듯 식탁의 반찬을 미친듯이 헤집어놓고 있다. 이렇듯 김사과는 조금의 희망도 남겨놓지 않은 채 소설을 끝냈다.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여전히 모르는 채로.



 뭐..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돈키호테로 힐링해야겠어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