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회사를 옮길 때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매달 10 만원씩 책 값을 지급함.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확인하니 꼬박꼬박 10 만원씩 적립되어 있었고,
그 액수가 열달 합쳐서 100 만원 돈의 책을 살 수 있도록 금액이 쌓여 있었음.
이번 겨울까지 책을 사지 않으면 적립된 복지계정의 책값은 모두 0으로 사라짐.
회사의 복지 제도를 잘 몰라서, 일단 급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더니...
인터넷 서점에서 산 책은 일절 책값 복지비용을 지원할 수 없다고 답변이 왔음.
오로지 오프라인 서점에서 산 책만 회사의 복지비 책값으로 처리가 가능하다나...
<광란의 오를란도> 10 만원어치를 산 것은 내 돈으로 좋은 고전 산 셈 치고,
이번 주말에는 광화문/잠실 교보문고에 들러서 굶주렸던 책 쇼핑에 나섬.
우선적으로 절판 속도가 빠름에도 불구하고,
최근 너무너무 바쁘기도 하였고 금년에는 해외 출장도 너무 많았던 관계로
장르문학 쪽으로 출간된 신간 중 완전히 놓지고 있었던 책들을 쭉 훑어 내림.
조만간 절판되어 사라질 책 중에서 놓치면 곤란한 물건부터 빨리 챙겨야 하니까...
(왕년에 비하여 올해는 해외를 떠돌아다니면서 프로젝트하느라 책을 별로 안샀음)
우선 '아작'에서 나오는 책들은 초기에 출간된 5권을 사 읽고는 잊고 살았는데,
생각밖에도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거의 매달 출간되다시피 하여서 깜짝 놀랐음.
잘 모르는 사이에 코니 윌리스의 장편이 2 편이나 나온 것도 반가운 일이었고,
왕년에 단편 <항체>로 감탄했었던 찰스 스트로스의 장편이 나온 게 가장 기뻤음.
여하튼 '아작'에서 나온 책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좀 있어서,
이미 오래 전에 사 읽은 하인라인의 <은하를 넘어서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J.P. 호건 <별의 계승자>, 케이트 윌헬름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세 권을 빼고
나머지 '아작'에서 새로 나온 책들은 가타부타 따질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모조리 사 들임.
경애하는 르 귄 선집이 나오고 있었던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리마인드가 되었음.
르 귄 선집 1권, 2권은 왕년에 출판사가 보내준 게 있고, 3권은 구판을 사 읽었으니 넘어가고,
제대로 접해 본 바가 없는 책에 해당하는 4권 <내해의 어부>와 5권 <세상의 생일>을 사들임.
<세상의 생일>은 가드너 도조와 편집 앤솔러지 <21세기 SF 도서관>으로 나올 때 표제작이었는데,
어차피 르 귄의 최신 단편집을 따로 사 읽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선택함.
옥타비아 버틀러의 장편 신간이 두 편이나 나오는 대박 사건이 있었는데도 몰랐음.
오멜라스에 나온 <야생종>을 읽고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는데,
단편집 <블러드 차일드>와 작가의 대표작 장편 <킨>이 한꺼번에 번역되어 나오다니...
그리폰 북스 2기 편집자였던 Decca님이 비채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들었는데,
그 영향은 아닐까 아주 짧게나마 잠시 생각했음 - Decca님은 옥소독스한 추리 매니아인데...
깁슨의 <뉴로맨서> 시리즈 3권 <모나리자 오버드라이브>가 나온 것도 꽤 놀라운 일이었음.
4년 전 요맘 때 안선생이 대선에 나간다고 하면서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하는 바람에
<뉴로맨서> 시리즈 2부 <카운트 제로>가 타이밍 맞추어 급작스럽게 출간될 수 있었는데,
난데없이 4년이나 더 지나서 3부가 뒤늦게 번역될 줄은 꿈에도 몰랐음...
여하튼 청담사에서 <뉴로맨서>가 처음 번역 출간된 것이 1992년인가 그러니까,
무려 24년만에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 3부작이 비로서 완역된 것을 사 읽게 됨...
상상도 안했는데 휴고상 덕분인지 <삼체> 2권이 나온 것도 뜻밖이었음.
중국 SF가 번역된 것도 이변이지만 <삼체> 1권의 초역본 표지 디자인은 그 자체가 참 희한했는데,
어떻든 그게 놀랍게도 SF 쪽에서 가장 유명한 휴고상을 받는 바람에 더 입방아에 오르게 됨.
이후 <삼체> 2권이 나오면서 다시 재출간된 <삼체> 1권도 표지를 수수하게 바뀐 것을 보고 안심함.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의 6번째 장편 <모든 것이 종말>이 새로 나왔길래 사들였고,
마리사 마이어의 <신더>로 시작하는 동화 차용 SF 시리즈 [루나 크로니클] 3부와 4부도 나와서
예전에 1부 2부를 워낙 기쁜 마음으로 읽었던 것을 기억하며 즐겁게 사들임.
<링 월드> 시리즈의 2부가 번역된 것도 한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반가웠고...
낸시 크랜스 단편집은 작년 요맘 때 나온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책을 보게 되었음.
올해 들어서 제대로 읽지 않고 지낸 SF 신간들을 폭풍과 같이 한꺼번에 사들인 관계로...
당분간 정신 못차리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됨.
[사족 1]
스티븐 킹의 아버지는 "담배 사러 나간다"라면서 어느날 가출해 버렸다고 하는데,
그 아버지는 떠났지만 SF/팬터지/호러 페이퍼백 장서를 산더미같이 남겨 놓았다고 함.
스티븐 킹은 자라면서 집에 쌓인 그 책들을 몇 번이나 읽고 지내며 작가가 될 준비를 마쳤다고...
현재 우리 집에도 SF/팬저티/호러 등 장르소설 모두 합치면 천 단위가 넘어갈 것 같은데,
내 자녀들도 이렇게 쌓인 책들을 성장하면서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 지 궁금하기도 함.
[사족 2]
오프라인 서점에서 택배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을 처음 알았음.
2만원 이상 구입하였을 경우 택배로 무료 배달이 가능하다고 해서,
비도 오는 날씨에 무거운 책을 집으로 들고 갈 생각 전혀 없어서 택배로 부침.
온라인 주문하면 회사에서 복지비로 책값 지급을 안해준다고 하니 오프라인으로 쇼핑해야 하고,
그렇게 구매한 책들을 또 택배로 부치려니까 이거 꽤 웃기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음.
화요일이나 되어야 사들인 책들이 집에 도착한다고 하니... 아주 희한한 느낌이 들었음.
회사 부럽다 한달에 10만원이면 원없이 사겠네
와 어디 회사인지 ㅋㅋㅋㅋ 킹왕짱
L 모 회계법인의 컨설팅 사업부입니다. 한국에서 2, 3등 하는 회계법인이므로 미루어 짐작하시길...
삼일 안진 삼정 한영 ?????? 와 복지 엄청 좋은 듯...부럽다
ㄴㄴ 웃기는 것은... 내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책값 지급하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다른 회사 중에 그렇게 해 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 알고 여태 부러워하고 있었음... 제도를 모르면 이용할 수가 없음
퍄 몇년치는 사겟다
루나 크로니클 저도 잼나게읽었어요
부럽다.
개부럽다 난 공돌이인생인데 ㅎ
ㅊㅊ
ㄴㄴ저도 이공계 공돌이 출신입니다... 회계법인에 다니기는 하는데, 지금도 해외 공장 돌아다니면서 생산 시스템 만드는 프로젝트하니까요
성의있는 글에 ㅊㅊ
무려 책값지원....ㄷㄷㄷㄷㄷ 객스러드횽 부럽네요 ㅠㅠ
와 책값 지원이라니 ㅠㅠ
헐 좋은회사 //삼체 표지 좋았는데
히익 엄청난 구매목록! 보관함에 추가합니다.. 점원이 놀랐을득요
와 부러워요
ㅊㅊ
좋은 회사다. 우리는 복지비가 워낙 작은 데다가 책값 한정이 아니라서 보통 딴걸로 때우게 됨 ㅋㅋ
정말 좋은회사네요 ㅜ
링월드 시리즈도 참 재미있죠 그리고 르긘여사 단편집은 바람의 열두방향이 좋은것 같아요
ㄴ <바람의 열 두 방향>은 르 귄 초기 단편집입니다. 그리고 SF 문단이 낳은 가장 좋은 단편집 중 하나죠. 한국에는 십 수 년 전에 이미 초역본이 나왔구요. 이번에 르 귄 선집이 나오면서 <바람의 열 두 방향>은 르 귄 선집 3권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석박사인줄 알았는데 직장인 내공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