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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정치사에서 탕평은 내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정조 탕평은 영조 말 혼란했던정국을 돌파하여 더 높은 차원의 탕평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교과서 상에서 정조의 탕평책과 왕권강화책의 일환으로 언급되는 규장각 설치와 초계문신제의 주목 및 의리탕평론자로서 정조의 역할, 시파와 벽파의 갈등 등, 현재 탕평연구에서 기반으로 삼고 있는 연구성과들은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하였다. 


김성윤도 그러한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정조 탕평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하였다. 정조 시기 정치사는 각 당파가 당파 자체의 의리보다는 당파 내에서도 세력이 갈라지며, 서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리와 이익을 위해 느슨하게 연대하고 적대하였다. 


김성윤은 이러한 당파의 특징들을 연구에 잘 살려냈다. 비록 정조를 진보적이라고 평가하고, 시파를 정조 정책의 협력자, 벽파를 정조 정책의 반대자로 이분화하는 등 현대의 여러 연구에서 반박된 주장을 하고 있는 등 한계를 보이고, 은연중에 노론 벽파를 개혁 반대파로 채제공을 친왕 세력으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일견 사이비 학자들에 의해 노론 음모론으로 남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등 근래 관점에서 보자면 미비한 점 역시 보인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정조와 심환지 사이의 어찰도 발견되지 않았고, 탕평정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던 터라 이 정도의 도식화에 대해 크게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연구성과들이 있었기에 이후 2000~2010년대에 걸쳐 더욱 다채로운 탕평정치 연구가 등장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점을 항상 유념하며 오래된 연구를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