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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출판사 것으로 읽었음.
질풍노도 문학의 대표작인 만큼 자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하면서 nature로서 자연과 자기 본성의 동일시함, 감성과 영감을 찬양하고 감성 묘사를 폭풍같이 솔직하고 격렬하게 함, 이성과 제도를 비판함 등등의 특색이 매우 뚜렷하게 보인다.
원래 감수성이 예민하고 풍부한 질풍노도적인 인간인 베르테르는 사랑을 계기로 한껏 감수성을 끌어올리고 감정적 격동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랑과 낭만에 냉담해진 오늘날 한국 사람이 보기에는 과몰입충으로 보일 수 있다. 사실 괴테도 이런 과몰입을 경계하고자 했는데, 소설이 베르테르의 자살로 끝나는 것부터 질풍노도적 자아 혹은 낭만주의적 자아의 실패를 예고한 거나 다름 없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빌헬름이 예술을 위해 야밤에 가출까지 하지만 결국에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한 것과 대조적이며, 이는 괴테 자신이 베르테르형의 주체를 뛰어넘어보려는 성찰의 결과일 것이다.
괴테가 의식적으로 질풍노도가 과도할 때 일어나는 파국을 경계했다는 또 다른 증거는 결말 외에도 초반부에 종종 나오는 감성과 이성의 관계에 대한 말들이다. 5월 26일자 편지에서 베르테르는 규범이 진실한 표현을 파괴한다지만 신사들이 강에 둑을 쌓아서 '재난'을 방지하고 밭을 지키려고 한다는 비유를 들면서 감정을 주체못하는 것의 위험성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다.
괴테 자신도 의식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 베르테르 자신의 편지와 친구의 호의적인 후일담이라는 형식으로 구성된 점도 베르테르의 질풍노도적인 사랑을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한 장치다. 베르테르적인 자아와 감수성은 오직 베르테르 자기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샤를로테의 시점에서 전개되었더라면? 샤를로테의 남편 알베르트의 시점에서 전개되었더라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다.
특히 여성도 단순히 구애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말할 수 있게 된 오늘날 베르테르적인 사고와 행동거지는 꽤 거북스럽다. 로테와 알베르트 부부는 무슨 죄를 지어서 눈치 없이 유부녀의 집에 맨날 놀러오는 베르테르를 응대해주고, 호의를 베풀어주고, 위험한 감정을 달래주고, 자살 방조 당한건가?
비록 3부격인 친구의 후일담에서 마치 로테가 베르테르를 좋아했던 것처럼 서술되지만 이건 화자가 화자인만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작중 베르테르 편향적인 서술로 볼 때조차 로테의 행동과 말은 항상 베르테르와 친구로서 선은 지켰던 것으로 보이며, 다만 로테가 착하고 친절해서 베르테르를 그렇게 대해줬던 것 같다.
여러모로 보아 괴테는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홀린듯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다지만, 꽤 '정직하게' 혹은 '냉정하게' 이 소설을 썼으며, 이 정직함 혹은 냉정함이 훗날의 독일적 고전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루소의 신엘로이즈가 영향을 상당히 줬다던데 그거도 궁금하더라. 확실히 18세기 후반 즈음 고전은 감정의 격류를 솔직하게 드러내서 좋음. 19세기 초반의 스탕달도 그런 편이고.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도 신엘로이즈가 엄청 중요한 소설처럼 나오지 않았나? ㅋㅋㅋ 18세기의 격렬한 감정표현이 넘치는 일상은 정말 다시는 오기 힘들 거 같음.
거의 뭐 당대의 낭만주의 뿌리는 루소부터 시작하니까.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의 선봉장이었으니.
사이코 소시오패스 스토커 베르테르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