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금각사 소설에 대한 감상
금각사의 시간적 배경은 태평양 전쟁의 시작에서부터 세계 2차 대전의 종전 이후다.
폭력이 정당화되는 시기에 피에 눈이 먼 사람들의 광기는
배를 밟는 미군, 우이코를 죽인 탈영병과 같이 나타나고 시작부터 끝까지 소설은
새하얀 눈, 피부, 과부와 내장, 혈흔과 같이 적/백 대비의 색채가 나타난다.
이 색채와 내면을 휘벼 파는 듯한 표현력은 이 소설의 중심주제인 불안과 광기를 한 층 더 고조시킨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형성되는 주인공의 이상향, 그리고 이상향의 몰락과 파멸로 진행된다.
우이코의 파멸은 자신이 말더듬이임을 비하한 것에서 시작하여 증오의 감정으로 자라나 일어났고
금각사의 파멸은 자신이 끝내 금각사를 소유하였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아름다움의 이데아, 미지의 어떤 것으로 존재해야했음을 깨달았을 때 일어났다.
우리 삶은 금각사의 연속
아마도 누구나 금각사 소설을 읽었을 때 주인공의 내면 속에 푹 심취해서 읽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보곤 한다. 이렇게 불완전한 외면을 지니고 무한한 아름다음을 추구한다면 결국에는 이러한
광기의 파멸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나는 이것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고 싶다.
우리의 삶은 금각사의 연속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왜 인생을 살아가냐고 물어보면
부를 쌓거나 높은 지위를 갖기 위함이라고 대답하지만, 그것은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 우리 모두의
삶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요즘은 예술로 먹고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삶을 움직이는 건 아름다운 문학작품의 한 장이며, 노래 한 곡이며, 그림 한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은 단순히 예술작품이나 노래선율 등을 칭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인식하는 모든 인간사, 풍경, 희로애락을 말한다.
금각사의 연속인 우리의 삶은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삶을 말하는데,
우리가 여기서 광기와 함께 무한한 아름다움을 추구할 것이냐,
세속적인 현대사회 속에서 보조적인 수단일 뿐인 것들을 추구할 것인지는 개개인의 몫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꾸민다, 아름답게 보이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한다.
종종 예쁜 외모만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지만, 그것은 그저 낙엽처럼 질 뿐더러,
그저 무한한 욕망의 추구의 산물일 뿐이다. 금각사조차도 일시적인 아름다움이자
항상 불태워진 금각사와 불태워지지 않은 금각사가 동시에 존재했기에 아름다웠다.
그만큼 우리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값 싼 아름다움은 짧으며 무의미하다.
하지만 절대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 내면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무한한 추구이자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기계문명의 태엽바퀴가 아닌
예술, 좁은 의미로의 예술이 될 수도 있고, 넓은 의미로의 예술이 될 수도 있는 그 예술인 것이다.
인생은 금각사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끝까지 연속하기 때문에 금각사의 연속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의 추구에 대한 생각이 나랑 비슷하네... 잘 읽었음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