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너무 어지럽다

검열 통제 제발 못살겠다고 하는 작가시인철학자들은 한 무더기인데, 정작 검열에 대한 얘기는 하지말라는 게 잘 이해가 안 감

아니, 그것보다도 그냥 책 얘기에 연관하면 해도 상관없는데 정작 평론가 말투 역겹다고 나만 읽으면 되지 않냐는 식으로 생각해와서

누가 봐도 괜찮을 만한 글 뚝딱 써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서 뻘글이라도 써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체제가 일반인에게 향하는 검열과 통제, 총살의 결말을 본 독서인들이라면, 지금 같은 검열과 통제를 향한 시도를 가만히 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저항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와 현실은 너무 멀다고, 단지 음모론적 얘기가 아니냐고 낙관론적인 주장을 펼치지만,


우리가 저항해야 할 때 저항하지 못한다면, 정작 모두가 어딘가 크게 잘못되어버린 현실을 깨달았을 때 사태는 이미 너무나 늦게 되어 그 어떤 저항도 소용이 없거나,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피와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어왔던 출판물의 저자인 소위 지식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위해서라면, 이미 늦어버린 그 때에야 뒤늦게 분노하고, 지식인의 의무를 다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기 전에, 작금의 헌법 가치 위기와 같은, 직면한 사태들에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작은 가치 하나 하나를 잃는 것을 무시하고, 누군가 우리의 권리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을 좌시하다 보면 결국에는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가치와 권리에 대한 위협이 도래하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이어서. . .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치가 출현했던 것이 벌써 100년이 더 지난 일이 되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현대의 전체주의 국가들의 억압, 선동 기술이 100년 전보다도 못할 것처럼,

굉장히 어설프고, 혹시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현재의 미온적인 분위기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 사회의 분열과 방관자적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전체주의적 전략은 이미 100년 전에 보란 듯이 성공했으며, 역사는 25년에 달하는 그들의 지배와 학살을 기록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나치 뿐 아니라 당시 전체주의에 지배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와는 달리 자유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일 것이다. 그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방관했기에 지배 받은 것이다.

그리고 전체주의의 역사를 기록하는 펜은 아직까지 마르지 않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대의 홀로코스트는 우리 바로 이웃 나라에서 지금도 티베트 인종 청소라는 형태로 버젓이 일어나고 있고, 그를 증명할 수 있는 수많은 근거가 발표된 지 오래이다. 그들은 10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된 전략을 사용하여 검열과 통제를 시도하고 있으며, 10억 명에 달하는 국민들을 통제하는 데에 성공한 그들의 수법이 우리 눈에 쉽사리 발견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만에 가까울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경제적 압박과 매수, 스파이, 국가 시설 인수 시도 등을 통해 다른 나라들을 자신의 일대일로 계획에 동참시키려 하고 있다. 화웨이의 핸드폰에 백도어가 설치되어 있는 사실이 미국에서 폭로된 것을 음모론이라고 치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다시금 반복하지만, 그 명분과 광기가 어떤 종류이냐에 초점을 맞추게 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굴복하지 않고,

단호하게 우리가 지켜야 할 권리에 주목하며, 침범하려는 그 모든 시도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