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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장르 출판사에서 SF 이름을 달고 나오는 소설들보다 오히려 일반 문학 출판사에서 일반 문학처럼 나오는 소설들이 더 나은 것 같다. 을유에서 나왔던 <갈라테아 2.2>라든가, 아니면 이 <스너프>가 그렇다. 초반 몇십 페이지를 읽자마자 '이건 SF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옮긴이 해설이나 책 뒷면의 소개문을 봤지만, 딱히 이것과 관련된 언급은 없어 더 묘하기도 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책을 science fiction으로 소개하고 있으니 아마 SF라고 보는 게 무방하리라.)



사실 설정 자체는 여타 SF처럼 어느 정도 진부한 면이 있다. 현재로부터 훨씬 더 미래에 빈부가 완전히 격리되어 사는 세상, 그 세상에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폭력과 그 폭력을 촬영해 돈을 버는 사람들, 그리고 발전된 기술 속에서 무의미해진 사랑으로 인해 발전한 섹스로이드 등등. 노골적으로 말해서, 요즘 이런 설정은 포르노에서조차 빈번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설정의 문제는 사실 그렇게나 매력적이진 않다. 누군가는 이 글을 소설보다는 만화에 더 어울렸을 법한 글이라 평하기도 했다. (뭐,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다.) 하지만 그만큼 재밌는 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이 매력은 어디에서 올까?



먼저 분명하게 밝히지만, <스너프>는 풍자 소설이다. 상술한 온갖 설정들은 클리셰로 쓰이는 만큼이나 엄청나게 과장되어 있고, 그 과장됨을 서술하는 방식이 상당히 우스꽝스럽고 신랄하다. 페미니스트의 얼굴을 앞세워 배우들의 엄청난 부를 토대로 로비한 결과 섹스 동의 연령이 46세까지 올라가 있는 현실이라든가, 그러면서도 기실 이 섹스를 누군가 '목격'하지만 않으면 사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행동해도 되는 위선적인 현실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펠레빈은 여기서 그 위대한 앵글로색슨식 위선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하하, 빅토리아 대영제국이란.) 물론, 주인공이 몇 년 간의 할부로 구매한 최고급 섹스로이드(말다툼을 하다가도 언제든 정지시키고, 설정을 조금씩 바꿔서 다시 구동할 수 있는) 역시 이 섹스 동의 연령의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이 과장적인 풍자는 매스미디어에게 향할 때 가장 날카로워진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로 자주 나오곤 하는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 사이의 흐려짐. 여기서 뉴스가 아닌 것에는 온갖 것들이 올 수 있는데, 광고가 올 경우 정보의 신뢰도는 이해 관계에 따라 좌우하는 것이 되며, 영화가 올 경우 정보는 흥미롭게 조작되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이 시대에는 그 경계가 너무나 흐려지다, 기어이 영화와 뉴스가 동시에 그 아우라를 완전히 잃고 만다. 이것이 그저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안심도,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믿음도 없어졌으니 누가 이것들을 볼까? 그리고 여기서 제목, <스너프>가 등장한다. 스너프. 우리를 극적으로 자극하면서도, 반드시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야만 하는 영상. 섹스와 죽음으로 가득하고, 그 과정에 도달하기까지는 약간의 조작이 있어도 괜찮지만, 영상에 담기고 있는 그 순간, 그 순간만큼은 반드시 실제 그대로여야 하는 종교적인 영상. 그것이 스너프다.



이 스너프를 위해 상공의 오프스피어에 사는 인간들은 지상에 남아 있는 오르크(판타지에서 말하는 그 오크가 맞다)들을 대상으로 매번 전쟁을 일으킨다. 소위 참여하는 지식인인 디스코스몽거(대충 해석하자면 담론팔이)가 오르크 사회 속의 '불의'를 발견하고, 지적하고, 폭로하며 현재 오르크 사회의 전제정을 뒤집어 엎는 것이다. 이 과정은 완전히 촬영되어 생중계되고, 더 좋은 영상을 찍는 이에게 더 많은 돈이 주어진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오르크 사회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애초에 패배한 오르크 지도자는 딱히 죽지도 않고, 자기 역할을 다 했으니 오프스피어로 올라와 오르크 사회에서 빼돌린 돈으로 안락한 생활을 즐긴다. 실제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와 그들의 역외탈세를 암시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주인공과 그 섹스로이드 사이의 문제 같은 중심 플롯은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화자인 주인공 본인 입으로 말하듯, 이 문제는 기실 그 자신만의 문제, 그가 가장 원하던 성적 대상의 본질이 그를 버릴 수밖에 없도록 그녀를 유도한다는 데에 있었으니까. 외려,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약간 감탄한 바가 있다. 왜냐면 솔직히 말해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유명 작가는 미셸 우엘벡 정도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스너프>는, 펠레빈의 다른 소설에 비해서 상당히 추잡하고 자극적이고, 읽기 편하다. 아니면 한국에 번역된 글이 그리 많지 않아 이렇게 느꼈을 뿐이고, 그새 펠레빈의 소설이 이런 식으로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펠레빈의 예전 소설들과 그 시대의 포스트모던 소설들을 생각해보고 또 이 <스너프>를 보자니, 그 예전에는 세기말 이후의 미래, 소위 '역사의 종언' 이후의 시대가 어떻게 될지 정말 짐작조차 들지 않고, 아직까지는 괜찮게 흘러가지만 영 그 예전까지의 가치관으로는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던지라 그 복잡하고 상징적이고 모호한 편집증적 세상을 그려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 뒤 시간이 흐르고 이 '새로운 시대'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괴상하게 변모하고 어떤 의미로는 추잡스럽게 무너져가고 있는지를 보고 나니, 사실 그런 수사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예전 리얼리즘 문학처럼 현실을 그대로 보고, 이를 조금만 더 과장해서 외삽하는 것만으로도 포스트모던 시대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대가 약간 두려우면서도 흥미롭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