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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갤 하다보면 종종 정지돈을 그저 백과사전 소설, 지식 자랑 소설 등등으로 까는 글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건 정지돈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생각함.


단편들 좀 읽어보니까 각종 영화, 미술, 건축, 문학 분야의 잡다한 지식들이 언급되지만 그건 정지돈의 스타일에 불과하고, 작품 속에 작가 본인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담겨있음.


내가 생각하기엔 문학(더 넓게는 예술, 혹은 예술가)의 처지에 대한 정지돈의 시각, 소설가로서 정지돈 자신의 방향성 등등이 위트와 풍자 속에 숨어 있음. 가령 '창백한 말'에 등장한 이런 싸늘한 농담처럼.


'장은 틈만 나면 브로드스키의 일화를 인용했다. 예술가를 기생충으로 보는 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마찬가지야. 자본주의에선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사회주의에선 기생충을 구충제를 먹여서 죽이려고 하지만 자본주의에선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죽거든.'


또 이런 문장


'해프닝이란 무의미로 의미를 건져내는 얼음 낚시 같은 것입니다.'


처럼 정지돈의 소설은 해프닝으로 가득함. 그냥 읽으면 이 해프닝들은 무관한 걸로 보일 수 있지만, 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이 모든 문장과 장면이 엮어져 문학(혹은 예술)에 관한 이야기, 정지돈의 시선이 담긴 작품으로 읽히게 됨.


'뉴욕에서 온 사나이' 같은 단편의 경우에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나'를 뉴욕에서부터 찾아온, '나'의 동성 애인이었다는 가난하지만 명성 있는 망명객 시인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삶이 계속 묘사되는데,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가도 중간에 나오는 이런 구절


'설명이 안 돼. 내러티브가 아니라 문장으로 말하는 소설이야.'


이런 문장을 접하면서 결국 레이날도의 해프닝은 어떤 내러티브를 이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됨. 결국 정지돈의 소설은 내러티브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주제에 대해 직접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작품이구나 여겨짐.


그래서 그냥 정리하자면...단순 백과사전식 소설은 아니다~ 작가 나름의 주장이 조금 복잡하게 담겨져 있을 뿐이고, 조금만 더 들여다보며 즐겨보자


+ 정지돈 소설의 TMI적인 요소들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진 말고 아는 단어 나오면 와! 이거 아시는구나! 하는 재미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듦


++ 정지돈 위트가 상당히 내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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