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7ceb8371b3856ef53ee898b21fd70403bbf5836605a36d0a04b1e2



필자는 재야의 화이자 2차 접종자 "제임스초이스"이다.


러시아 문학 애호가들은 때때로 러시아 고전 문학을 번역본으로 읽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를 자문하곤 한다.


이런 질문의 배경에는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불신이 놓여 있다.


그런데 필자는 번역이 언제나 원문을 보완해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또한 언제나 원문을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기 때문에 원어 텍스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즉 하나의 문학 텍스트는 번역 텍스트들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문학을 번역으로 읽을 수 없기에 그들의 텍스트는 고정불변의 것이며,


그런 점에서 제한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제한적인 외국어 실력보다는 위대한 번역자들인지도 모른다.


즉 고전 문학의 저자와 거의 동등한 위대성을 가진 이상적인 번역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그런 번역자들을 갖기 위해서는 번역자들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나는 휠덜린에 의한 그리스 비극 번역 같은 예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의 국문학은 매우 고립되어 있고, 국문학만의 유일무이한 잣대를 가지고 있어서 결코 외국 문학과 비교되지 않는데,


번역에 대한 경멸은 이러한 특수한 잣대의 훌륭한 명분으로 기능해 왔다.


만약에 외국 문학과 국문학을 같은 잣대로 잴 경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 작고하신 대가인 황현산 선생님은 이런 내용의 트윗을 남기셨다.


즉 국문학계가 일제 시대 보잘것없는 작가들까지 샅샅이 뒤져 정전화해 놓았는데,


그 시대 b급 프랑스 작가를 국문학 가운데 가져다 놓으면 ss급이 된다는 것이다.


번역에 대한 경멸은 지난 100년 동안 이러한 냉정한 평가로부터의 피난처 역할을 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경멸 속에서 번역문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정전이 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경멸 속에서 번역 문학은 하찮은 것이 되며, 국문학은 한없이 신성한 것이 된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번역의 목적을 오해해온 것이다.


문학 번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편법의 제공이 아니라,


작가가 펜을 놓은 지점에서부터 정확성과 표현력의 극치를 향해 원텍스트를 발전시키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나는 최민순에 의한 신곡 번역과 같은 예를 염두에 두고 있다.


현대어의 억양과 뉘앙스는 근본적으로 중세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격렬하고 분열적이다.


단테는 우리와는 달리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어 독자들은 최민순역 신곡과 같은 현대적 신곡을 읽을 수가 없는 셈인데,


우리는 그러한 이점을 애써 무시하기보다는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훌륭한 번역본이 있을 경우에는 원어를 그다지 부러워할 까닭은 없으리라고 본다.


서구에서 러시아 고전 문학은 전통적으로 번역본으로 읽혔다.


쿤데라는 조이스, 카프카 등등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대가들이 러시아 고전 문학을 번역으로 읽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매우 심오한 영향을 받았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미권 선정 "가장 위대한 소설 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곤 하는 러시아 고전 작품들도 모두 번역본들이며,


우리는 오히려 그러한 대담한 비교를 두려워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심지어 유럽 각국 언어에 통달했던 비평가인 조지 스타이너조차


근대 문학 최고의 작가들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으며 두 작가를 비교한 책인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를 영어 번역본으로 읽고 집필했다.


왜냐하면 그가 유럽 각국 언어에 통달했지만 그중에 러시아어는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위대한 문학가들 중 원어로 러시아 고전 문학을 읽은 이들은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그들은 러시아 고전 문학을 비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대담성이 결여되어 있다.


고전 번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언어 장벽을 치우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고전 번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표현의 극치를 향한 텍스트의 성장이다.


고전 번역을 통해 영원한 것이 보존되는 한편 창조적인 것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향 속에서 <예술번역>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레르몬토프의 시에 붙인 곡을 안나 게르만이 노래함.

Выхожу один я на дорогу 홀로 나 길을 나서네

https://www.youtube.com/watch?v=qTIOP2X_Fn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