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신약과 시편이 공개되었는데,
https://www.bskorea.or.kr/KNT/index.php
여기서 읽을 수 있다.
다 읽은 건 아니고 약간 흝어본 소감 남김.
장점1. 원문을 매우 정확하게 번역하려고 한 티가 남. 어순도 원문에 맞춤. 내가 아는 한, 원문에서 번역한 한국어 성경 중 가톨릭-개신교 통틀어 가장 어순에 신경 쓴 성경임.
가령 시편 1편 1-2절을 보자면
"복 있는 사람은 ...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개신교 개역개정)
"복 있는 사람은 ...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개신교 표준새번역)
두 개신교 번역이 위와 같이 옮긴 것을 새한글성경은 다음과 같이 옮김:

새한글에선 '소리 내어 읽'는 걸로 옮겼고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에선 '묵상'으로 옮겼는데, 원문(히브리어: 하가)은 소리내어 중얼중얼 거린다는 의미라서 묵상보다는 새한글 쪽 번역이 맞음.
"
히브리말 '하가'는 의성어로, 그 어근은 비둘기의 구슬픈 소리부터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언어기관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의미한다. 이 낱말은 일차적으로 '중얼거리다, 속삭이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낱말은 신비적 차원의 묵상이나
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리 내어 읽는 것에 가깝다. "
-전봉순, "시편 1-41편" 68쪽
그러니까 시편 1편이 말하는 건 주님의 토라(가르침)를 밤낮으로 중얼중얼 대며 되새기는 사람이 복되다는 의미이지, 묵상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님. 실제로 New Jerusalem Bible은 이를 murmur(중얼중얼거리다)라고 옮김.
나머지
두 번역에서 '묵상'으로 옮긴 이유는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번역의 흔적임. 해당 번역에선 이걸 meditatitur라고 옮겼는데, 이게 영어의 성경
번역 전통에 영향을 주면서 meditate로 남은 거거든.(가령 King James 성경에서 이걸 meditate로 옮김) 다만 히에로니무스가 오역을 했다고 탓해선 안됨. 히에로니무스 시대는 책을 소리 내서 읽는 시대였고, meditatio는 오늘날의 의미와는 달리 상상이나 추리보다는 '되새기는' 단계였거든.(참고: 허성준, "수도 전통에 때른 렉시오 디비나" 1권)
이러한 정확한 번역 예시는 고린토1서 15장 5절에서도 확인 가능함. 간단히 대조해보자:
게바에게 나타나 보이셨고 다음으로는 열둘에게 나타나 보이셨다는 것을 말입니다.-새한글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개역개정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표준새번역
이 경우 희랍어 원문을 보면, 열두 제자도 열두 사도도 아닌 '열둘'(δώδεκα)로만 되어있기에 새한글 쪽이 가장 정확함.
장점2. 읽기 쉬움.
장점3.. 예수의 말을 존댓말로 번역함.
그리스도교 교의에 의하면, 예수는 메시아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시(며 나 역시도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를 의심 없이 믿)지만, 또한 역사를 살아간 인물이기도 함. 많은 한국어 번역은 이러한 예수를 비역사화할 위험이 있는 반면, 새한글성경은 예수가 '역사를 살아간 인물'이라는 점을 더 분명히 드러냄. 그러면서도 부활 이후의 예수 말투는 반말로 번역하여, 부활 전의 예수와 부활 후의 예수를 구분하고 있음.
단점1.. 어순을 살리기 위해 문장을 엄청나게 많이 끊음.
단점2. 한국어 존비어의 맛을 못 살리고 있음. 한국가톨릭 《200주년신약》의 경우도 공생활의 예수 말투를 존댓말로 번역했지만 새한글성경보다 훨씬 잘 살림. 이건 내가 가톨릭 신자로서 팬심 담아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너무 차이가 남. 약간 비교를 해보자:
보세요, 때가 오는데, 벌써 와 있어요. 그때에 그대들은 저마다 그대들 자신이 있던 곳으로 흩어지고 나만 혼자 버려둘 겁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내가 그대들에게 미리 말해 둔 것은 그대들이 내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려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그대들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힘내세요! 바로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새한글(요한 복음서 16장 32-33절)
보시오, 여러분이 각자 자기 (갈) 곳으로 흩어져 가고 나를 홀로 버려 둘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이미) 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일들을 말한 것은 여러분이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환난을 겪겠지만 힘을 내시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200주년(요한 복음서 16장 32-33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역시 그대들을 사랑했어요. 나의 사랑 안에 머무르세요. 그대들이 내 계명들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겁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요.
-새한글(요한 복음서 15장 9-10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은 내 사랑 안에 머무시오. 여러분이 내 계명들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게 됩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켰고 그래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200주년(요한 복음서 15장 9-10절)
간단히 말해서, 200주년에서 "하시오" 스타일로 약간 사극 느낌 나게 번역한 걸, 새한글에선 "해요" 정도로 번역함. 예수 발언 번역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런 "해요"체의 남발이 심함:
나는 가브리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어요. 그대한테 말해 주라고 나를 보내셨어요. 이 좋은 소식을 그대에게 알려 주라고요.
-새한글(루가 복음서 1장 19절)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곁으로 끌어당기고는 나무라듯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주님!"
-새한글(마태오 복음서 16장 22절)
흡사 웹소설 여고생 말투인데, 더 무서운 건 이 번역을 감수하신 분의 정체임.
열책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에서 예수의 어투를 저런식으로 변역했던거 같다..문학적 가치가 가장 뛰어난 한글 판본은 뭐라고 생각함?
문학적 가치는 모르겠고, 존비어의 맛은 가톨릭 200주년이 가장 잘 살렸다고 생각함. 다만 이 번역은 신약만 나왔음.
그냥 옛날꺼 읽는게 좋을 듯 예수가 반말을 밥먹듯이 했다는 거에 커다란 상남자 메리트가 있었는데 존대어는 카톨릭꺼가 좀 낫긴하지만 좀 별로이다
약간 어르신들이 '요즘 대학생들은 이럴거야'라고 망상한 느낌.
ㅇㅇ이거다. 예수는 반말을 하는 상남자였던 것.
항상 정보글은 추천한다. 힘내라. - dc App
나는 오히려 읽어보고 싶다. 책으로 나옴? 그냥 NRSV로 사는게 좋을까?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284138169
출판됨.
맨 위에 링크 타고 가면 웹에서 열람 가능.
근데 영어 성경 보면 새한글과 비슷한 느낌이라던데
장점 3에있어, 나는 개역한글, 개역개정의 번역이 성경 본연의 위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함 에초에 신분제 사회에서 랍비라고 일컫는 위치에서 존댓말을 하지 않는것이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음
단어란 무조건 한가지 의미만을 내포하는 것이 아님
그리고 본문에 제시된 [하가]를 [묵상]으로 변역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고려하고 판단해야 함
https://dict.naver.com/hbokodict/#/entry/hboko/5c5bc9dc2a5f4314bd6191a66a84d7db
히브리어사전 -> 1. 중얼거리다(사8:19.) 2.말하다(시71:24) 3. 숙고하다(시63:7)
그외, 1. 음모하다 (시2:1) 2. 슬피 울다(사59:11) 3. 생각하다(잠15:28, 사33: 18), 4.꾸미다(시2:1, 38:12)
위는 전부 고대히브리어 הגה(하가)임
이러한 단어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이것을 단순히 오역이라고 간주하는건 편협한 것임
난 묵상이 오역이라고 하지 않았음. 애당초 묵상(meditatio) 자체가 특히 과거로 갈 수록 소리내어 중얼대는 걸 포함하는 의미임. 문제는 오늘날 '묵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주로 떠올리는 건 내면적인 활동이기에 새한글 쪽 번역이 더 낫다고 한 것임.
물론 '하가'는 다의어이지만 1차적으론 의성어이고, 특히 시편 1편 2절에서는 '주님의 가르침(토라)'을 읽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 고대는 묵독 문화가 아니기도 하고.
이건 또 뭔소리야 1. 복있는 사람은 밤낮으로 말씀을 토라를 중얼거리며 읽는 사람이다 2. 복있는 사람은 밤낮으로 말씀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27.120임, 문맥상 전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음? 개역개정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공통번역 1.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2.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천주교: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전례시편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최민순역차라리 그의 낙은 야훼의 법에 있어밤낮으로 주님의 법 묵상하도다
영어 Rather, the law of the LORD is his joy; and on his law he meditates(명상) day and night. 라틴어 sed in lege Domini voluntas eius, et in lege eius meditatur(명상하다) die ac nocte.
악의 길을 쫒지 않고 주의 법을 ?? 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이것은 주의 법을 따르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의미이지, 과거엔 말씀을 통독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단 의미인가? 문장의 해독에 있어 중요한건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인데 "과거엔 경전을 통독하며 읽었다"란 이유만을 내새우는건 너무 1차원적이지 않음?
에초에 너가 제시한 murmur도 속삭이다, 우물거리다 등등, 내면의 작용이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대상하는 단어지 겉으로 신나게 통독하는 의미가 아닐 뿐더러, 대개 이런건 관용표현으로 받아들이지 직유하지 않음, 에초에 단어의 성질 자체가 그럼 (비고정적)
" 히브리말 '하가'는 의성어로, 그 어근은 비둘기의 구슬픈 소리부터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언어기관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의미한다. 이 낱말은 일차적으로 '중얼거리다, 속삭이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낱말은 신비적 차원의 묵상이나 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리 내어 읽는 것에 가깝다. " -전봉순, "시편 1-41편" 68쪽
기존 한글 번역본에는 '묵상하다'(개역한글, 개역개정, 새번역), '되새기다'(공동개정)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개정'과 '새번역'에는 각각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와 "또는 '읊조리는'"이라는 난외주가 붙어있습니다. ... 최신 구약히브리어사전에서는 이 히브리어 동사를 '낮은/작은 목소리로 읽다'라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 원어의 뜻을 2021년판 독일어 번역본에서는 "글자 그대로는 '중얼거리다'라는 뜻. 예전에는 듣는 사람이 없더라도 소리내어 읽었다. 읽은 것을 자신의 마음에 더 잘 새겨 넣기 위해서였다."라고 짧게 풀이해놓았습니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번역 해설집"
위에서 발췌했듯이 (형성된 번역 전통을 존중하는 거라면 모를까) 정확한 번역을 지향할 경우는 '중얼거리다' 류 번역이 더 나음. 그리고 해당 구절은 복된 사람의 구체적 특징을 나열하는 구절이기에 '중얼거리다'는 전혀 이상한 게 아님. 게다가 낭독하라는 요청은 "머리 비우고 낭독하라"는 요청도 아니고.
한편 시편 2편 1절의 같은 히브리어 단어에 대해선, 위에서 발췌한 번역 해설집이 이렇게 설명함: "히브리어 동사의 뜻에는 (1) 소리를 내는 것 자체와 (2) 소리를 내는 목적의 두 요소가 들어 있는데요. (1)에 초점을 맞추면 '떠들어 대다'는 식으로 번역할 수 있고 (2)에 초점을 맞추면 '(음모를) 꾸미다', '계획하다'는 식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곧 시편 1편의 경우 '낭독'의 목적을 감안하면 '되새기다' 류 번역도 원문 뜻을 해치지 않음. 문제는 '묵상'임. 라틴어 meditatio는 어근상으로도 의미상으로도 침묵을 내포하지 않지만, 한국어 '묵상'은 어근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의미에서도 침묵을 내포함.
단어는 하나의 의미만을 내포하는것이 아님 한국에서의 묵상은 [침묵]의 의미를 내포함->침묵의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에 그치는것은 아님
1. 모든 학설에 소수설과 다수설이 대립할 뿐더러 너가 제시한 문장은 전후가 생략되어 있음 글쓴이가 인용한 글의 저자는 [전봉순 수녀의 시편묵상]이란 방송을 한 전적이 있지 않음?
2. 난외주가 붙어있으며 히브리어에도 작은 소리로 읊다로 풀이된다 반박: 히브리어 사전을 이미 제시한 바 있음, 반복하지만 단어는 하나의 뜻만을 내포하지 않음 이것은 영어든 독일어든 라틴어든 다를것 없음, 당장에 heart murmur는 심잡음으로 번역되는데 이것이 심장의 읊조림, 심장의 중얼거림, 심장의 울부짖음임?
그리고 글쓴이의 주장대로, 시편의 저자가 [율법을 낭독한다]를 목적하였더라면 굳이 [중얼거린다]같은 에매모호한 표현 보단 좀 더 명확한 표현을 선택 했을것임
전봉순 수녀가 시편 "묵상"이란 표현을 썻다고 시편 1,2의 단어가 '묵상'으로 번역되어야 할 이유는 못됨. 그리고 meditatio류랑 한국어 '묵상'하고 차이가 있다고 난 말했음. 서양 말이 meditatio류로 옮긴 걸 근거로 '묵상'으로 옮기면 그게 바로 '중역'임. 반면 관련 전공자들은 이걸 '묵상'이 아니라고 친절하게 설명 중이고.
전통으로 굳어진 번역어를 존중하는 의미라면 모를까, 시편 1,2에서 '하가'가 '묵상' 맞다고 하는 전공자 글을 단 하나라도 발췌해보길.
좋은 번역은 읽는 독자가 원작자가 쓴 의미를 그대로 이해하도록 돕는거지 ㅇㅇ 단순히 원어에 대치되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게 좋은 번역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함.
저거 해요체 개신교의 습관인듯. 특정 신앙고백문도 전부 "해주세요"라고 적어놓은 거 보면
간단히 말해서, 200주년에서 "하시오" 스타일로 약간 사극 느낌 나게 번역한 걸, 새한글에선 "해요" 정도로 번역함. 예수 발언 번역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런 "해요"체의 남발이 심함: ...............읽다보면 '해요'체가 부담스럽긴 함.. 아직 어색함.. 이전 번역본들과 비교해서 보면 좋고.. 어순이 원문그대로이다 보니 시편의 경우 두어번 더 읽어봐야하지만 원어에 가깝다는 느낌이 어떤지 비교가 되는 것 같아서 일반신자입장에서는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았음....... 좋은 글 감사.
완벽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의 버전은 말씀의집에서 나온 직역성경인거 같음. 매쉬아흐 예슈아의 생명의 토라가 너희를 죄와 사망의 토라에서 해방하였음이라 이 문장만 읽어도 심장이 두근하지 않음? 나는 한 10권째 사서 뿌리고 있는데 강력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