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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에 싸인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봤을 때, 노동자 문학이 떠올랐다.


'내가 싸우듯이'


조끼를 입고 머리띠 두른 노동조합원들의 고된 투쟁을 다룬 소설인가?


그러다 이 단편집의 스타일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었고,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산 지는 오래 됐는데 꽤 묵혀놨음)




이 단편집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장', 그리고 '우리들'


첫 파트인 '장'은 '장'이라는 인물의 지인인 화자가 '장'을 관찰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총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에 한 번 독중감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 파트에서는 정지돈이 바라보는 예술 혹은 예술가, 정지돈 자신의 예술적 태도 및 방향성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옮겨놓았다. 인용이 하도 많아서 헷갈리는 거지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표현돼있다.




그래서 이번 독후감에서 중점을 두고 싶은 파트는 두 번째 파트인 '우리들'이다.


정지돈은 일차적으로 '시간, 운명, 역사라는 거시적인 흐름에 밀려난 이상주의자 예술가들의 전기'를 그려내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가를 묘사할 때, 절대 일류 예술가나 저명한 예술가에게 포커스를 두어선 안 된다. 약간은 '애매한' 예술가들을 데려와야 한다. 당시에는 이름을 날렸을지 모르나, 지금은 전공자들이나 알 법한 예술가들. 역사의 한 페이지에 큰 한 획을 긋지 못 한 인물들. 대표적으로 '건축이냐 혁명이냐'에 등장하는 '이구' 같은 인물이 그렇다. 해당 단편이 지어진 2015년 대한민국에 '이구'라는 황족의 건축가를 아는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됐을까.


그리고 단편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레 이러한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내가 모르는 게 가득한데?'


난 이런 독자의 반응은 당연하다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작가는 일부러 흘러간 한때의 예술가들을 전면에 세워둠으로써, '장'(정지돈의 예술을 향한 관점이 드러난 파트)에서 나타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우리들' 속 단편 속에서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장은 틈만 나면 브로드스키의 일화를 인용했다. 예술가를 기생충으로 보는 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마찬가지야. 자본주의에선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사회주의에선 기생충을 구충제를 먹여서 죽이려고 하지만 자본주의에선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죽거든.'




최근 정지돈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는데, 정지돈이 습작생 시절 한국 단편 소설을 많이 읽었고 그 중 정말 좋았던 작품을 다음 세 편이었다고 한다.


1. 배수아 '훌'

2. 정영문 '어느 목신의 오후'

3. 백민석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그 중에서 배수아의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는데, 알라딘의 독자평을 한 번 들여다보니 혹평과 낮은 별점이 그득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지돈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말한다.


'아, 이게 나의 미래인가?'


그리고 정확히 미래가 되었다. 슬프지만 2015 젊은 작가상만 봐도 정지돈에 대한 혹평은 꽤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정지돈이 집필 의도를 '거대한 시류에 휩쓸린 예술가'로 지정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흘러간 시절의 흘러간 예술 혹은 예술가가 소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정지돈 자신도 어쩌면 자신의 소설 속 예술가처럼 될 지 모른다. 끊임없이 대중적으로 거리를 둔 소설을 쓰고 손가락질 받는 요소(ex. TMI의 인용)를 놓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있기에. 그래서 단편집의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싸우듯이'


이 소설은 일종의 '예술 노동자 문학'이다. 물론 싸우는 예술가들은 세상에 정지돈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그의 주변에는 후장사실주의자들이 있지 않은가(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싸우듯이'라는 제목은 일종의 격려하는 투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들'은 서로 의지하며 싸워 나가자고. 지금 이 순간도 정지돈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스탠드를 켠 채 계속해서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