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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필자는 누군가를 공격할 의도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알린다.

아울러 필자가 조선족이나 중국인이 아님도 밝혀둔다.


필자는 며칠 전, 중문학은 수준이 매우 낮다며 왜 읽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보았다.

자칭 독갤 중문학 애호가로서, 지나칠 수 없는 글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글에 댓글을 정중하게 달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더 떠올랐기에, 이렇게 새로 글을 쓰기로 했다.


"취향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이 말은 취향은 옳은지 그른지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 말이 맞다. 취향은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존중받아야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취향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이 취향을 강요하는 글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유념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거듭 말하건대, 취향은 존중받아야한다.

중문학이 싫다는 것 역시 존중받기에 충분한 취향이다.


하더라도, 중문학이 "수준 낮다"고 하는 말에는 도저히 동의를 할 수 없다.

"이딴 문학을 시간 아깝게 왜 보냐?"는 말에도 전혀 동의를 할 수 없다.

이것은 '중문학'의 범위 설정이 서로 다른 것에서 나온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본 글에서는

위화, 모옌, 옌롄커

이 세 작가만을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중문학'이 <시경>, <초사> 등등 고대부터 시작해서 중화민국 시기의 현대 문학을 비롯해 1949년 이후 지금까지의 당대 문학까지를 전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문학'에 대한 의견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추정해볼 따름이다.


일단 당대 문학도 모옌, 위화, 옌롄커 세 사람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1976년 문화대혁명 종결 이후의 소설 문학만 따져보아도,

가오싱젠, 쑤퉁(苏童), 거페이(格非), 마웬(马原), 쟝롱(姜戎), 왕멍(王蒙), 비페이위(毕飞宇), 루야오(路遥), 쟈핑와(贾平凹), 장웨이(张炜), 왕안이(王安忆), 왕샤오보(王小波), 훠다(霍达) 등의 작가들이 있다.

또 이렇게 묻고 싶기도 하다. 중문학이 정말로 수준 낮다면,

왜 모옌, 위화, 옌롄커 등의 작가들의 작품이 다른 언어로도 번역되고, 상을 받는 등 호평을 받는지 말이다.

이것이 중문학이 중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공감을 얻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물론, 혹평과 불호의 존재도 분명하지만, "수준이 낮다"고까지 깎아내릴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필자가 본 글에서는 중국 문학이 서구 리얼리즘 사조와 형식을 그냥 수용만 한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솔직히 필자는 그 글쓴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전혀 모르겠다.

문학은 "복사해서 붙여넣기"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가 다른 작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그 영향을 숨김 없이 드러낸다 해도, 거기에는 정도에 상관없이 주관과 변형이 반드시 들어가기 마련이다.

단적인 예시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돈 키호테>와 카프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더러 "카프카를 베꼈다", "세르반테스를 베꼈다"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찬가지다. 당대 중국 문학의 모옌과 옌롄커도 <백년의 고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고해서 이들을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모조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만의 독창성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옌, 옌롄커 등의 작가들의 작품은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도 지적해두고자 한다.

특히 옌롄커가 그렇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최신작 종교소설 <심경>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아니, 한국에 번역된 작품만 보아도 옌롄커의 작품 경향은 순수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있다.


필자가 본 글에서는 "소재 면에서 당대의 역사를 소재로 주로 잡는 것이 식상해서 문학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소재가 비슷비슷해서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역시 주관적이니, 논의의 대상은 아니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중국 당대사가 문학의 많은 소재를 제공할 만큼 격동의 시대라는 것이다. 문학 역시 시대의 산물이니 말이다.

특히 문화대혁명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10년 동란은 역사적으로 중국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은 현재 진행형이다. 당장 필자도 싫어하고 독자도 싫어하는 습근평이 문화대혁명의 피해자이다.

중화인민공화국만의 역사가 1949년 10월 1일 건국된 이래로 72년 정도인데,

그 중의 10년 정도가 문화대혁명 기간이었으니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가.

문학의 소재로 쓰이지 않기가 힘들 것이다.

극한의 상황, '인성'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게 할 상황이 그렇게나 오래 지속되었으니 말이다.

문학은 '인성', 인간의 본성과 심령을 심미적으로 보여주는 예술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또 문혁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공산당의 검열 문제로 더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자 해도 한계가 있기도 하다.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과 <일식>이 금지된 것 등이 그 예시다.

"소재가 천편일률이다"는 평가 자체를 경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필자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존중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독서 갤러리 여러분의 중문학 탐구를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되도록 다양한 문학을 향유하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독서 갤러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에 대한 의견과 반박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러나 "짱깨" 등 중국을 혐오하는 발언은 삼가주길 바란다.

중문학 추천 질문도 대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