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가 도끼 소설 인물들이 체스판의 말 같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우리는 적어도 도끼 소설을 읽으면 그 게임의 인물이 되어 이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해럴드 블룸도 도끼의 결점을 지적했는데, 죄와 벌은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그는 당파심이 너무 강해서 독자들에게 개종시키려는 계획이 느껴진다는 것임.


쿤데라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가 느꼈던 건 문장 발화가 등장인물보단 작가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고 

이런 점들이 자연스레 이야기 속 모든 대상들을 소설의 시선에 따라 분석 대상인 것처럼 바라보게 된다는 것.


소설이 뭐 하나의 게임판이라고 한다면, 그 안에 뭔가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느낌을 준다면

쿤데라 소설을 읽을 때면 뭔가 게임에 참여하는 느낌보단 남이 만든 게임을 관전하는 느낌이 듬.

우리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결국 참여할 기회는 없는 거지.


보통 철학적이거나 분석적인 소설들이 인물과 심리적 거리가 간극이 큰데,

로베르트 무질을 읽을 땐 불편함을 하나도 못 느꼈는데, 

쿤데라 소설엔 왜 불편함을 느꼈을까? 


생각해 보면 주로 분석이 되는 게 인물의 서정적 측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음. 

커튼에 나오는 내용인데 쿤데라는 젊은 시절을 서정적 시기로 봄.

이 시기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한테 집중해서 주변 세계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판단하지도 못함. 

그래서 소설가를 서정 세계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다는 결론을 내렸지.


삶은 다른 곳에를 봐도 주인공과 여타 인물들의 서정 세계가 존재하고

작가는 그것에 들어가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비평하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듬.

나는 오히려 그러한 폐허적 감성에 작가의 시선이 붙잡힌 듯하다고도 느낌.

어쨌든 형식과 내용이 서로 부합하는가, 묻는다면 그 질문은 결국 해소가 안됨.


종종 얘기가 나오듯 나는 예술가보단 이론가에 더 어울리는 것 같고

소설보다도 소설론이 역시 더 매력적인 듯. 그리고 실제로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비평이 더 언급이 많이 되는 것 같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