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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은 조선후기의 새로운 학문사조인 실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일찍이 실학 연구를 시작한 국학자 위당 정인보는 반계를 실학의 일조(一祖) 성호를 이조(二祖) 다산을 삼조(三祖)라고 평할 정도로 실학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성호는 학문연구에 있어 매우 자유롭고 자주적인 학풍을 유지했다.
남인답게 퇴계 이황을 존승하고, 그의 주리론에 입각하여 율곡 이이와 노론계열 학자들의 성리설을 비판하였으나, 노론계처럼 특정 학자를 절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판단 하에 여러 학설을 수용하고, 비판하였다. 이황의 학설조차 잘못된 점이라고 생각하면 비판하였으며, 이이의 학설이라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수용하였다.
예학에 있어서도 서인계열 김장생의 예학을 고평가하는 등 그는 자주적 학풍을 유지하였다.
그가 저술한 사서의 질서는 그의 주자상대주의적 입장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가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알게 해준다.
성호의 이러한 자유로운 학풍은 서학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도 드러났다. 서양 과학과 천주교는 유학/성리학과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성호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성호사설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저술과 그의 문하생들인 성호학파에게로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천주교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하여 성호 좌. 우파로 갈라지지만 성호 우파 안정복 역시 기존의 성리학적 역사관에서 벗어난 동사강목을 저술하고, 백성 통치를 위한 목민서인 임관정요를 저술하는 등 성호의 자유로운 학풍을 이어받았다. 성호 좌파의 경우, 서양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는 걸 넘어서, 신앙으로서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등 탈성리학적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안정복과 성호 좌파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성호 학풍과 그의 가르침이 충실히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만한 점은퇴계의 도학과 성호의 실학을 연결하는 저자의 관점과 정약용 경학에 나타난 천주교의 영향을 분석한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성호는 퇴계를 존승했고, 그의 도학을 잇고자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퇴계 도학이 가진 현실외면적 측면에서 벗어나 율곡 중심의 사회개혁론에도 관심을 가졌다. 즉 성호는 저자의 관점에서는 전통적 도학과 새로운 학문 사조인 실학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정약용과 천주교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정약용은 1791년 진산사건 이후 천주교를 완전히 버렸다. 비록 달레의 한국전주교회사에서 다산이 만년에 천주교 신앙 생활을 계속한 것으로 기록되어있으나, 전체적 정황 상 신자로서 정약용은 1791년 이후 단절되었다.
그러나 그의 경학에는 천주교 세계관의 영향이 있으며, 이것이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평이다.
정약용은 워낙 박학다식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주자 상대주의적 관점과 경학서에서의 새로운 해석이 무조건적으로 천주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지나친 단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성호학파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분명 성호 이익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성호학파는 강화학파와 함께 주자도통주의에 경도돤 조선 사상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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