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기독교가 너무 단순한 교리 설명과 기복신앙적 요소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사실 기독교는 그렇게 하찮은 수준의 종교가 아님. 물론 시작은 하찮은 수준이 맞음. 야훼 신앙은 우리나라 단군신화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고대 셈족 신화에 불과했던 야훼 신앙이 바빌론 유수 이후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이신론적 세계관을 받아드리고, 헬레니즘 철학과 만나 그 교리를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민족 신앙에 불과했던 야훼 신앙이 보편종교인 기독교로 나아가게 된 토양을 만듬. 이것이 예수라는 걸출한 사상가를 만나서 민족 종교의 틀을 넘고 인류 전체에게 사랑이라는 가치를 전파하는 그리스도교가 됨. 이 초기 그리스도교는 지중해 세계에서 다양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생적으로 그 세를 불려가다 예수가 인간인 동시에 신이고, 하늘에 계신 야훼와 같은 존재라는 신학적 변이를 만들어내며 예수를 단순한 유대인의 메시아에서 전 인류를 구원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신학 체계를 만듬. 그리고 이에 기반이 된 게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와 현실 세계와의 관계임. 왜냐? 그 플라톤적 관점에서 나온 게 바로 유대교의 "지혜"이고, 이 "지혜"가 바로 요한의 복음서에서 나오는 로고스 이며, 이 로고스가 바로 삼위일체설의 근간이 되는 이론이라는 거임. 다시 말해, 예수가 신이라는 신성모독과도 같은 소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스 철학이라는 매우 탄탄한 철학 체계를 사용했다는 거임. 그리고 이 플라톤의 철학은 후에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천재 사상가가 다시 한번 체계화하면서 가톨릭의 기틀을 잡은 거임. 물론 이 과정에서 영지주의같은 이단들이 달라붙긴 했지만.


즉 성경을 단순한 유대인의 창작품으로 봐선 안됨. 이건 고대 근동의 온갖 종교들의 혼합체적 성격의 유대교가 예수라는 뛰어난 사상가와 만나 그리스 철학이라는 매우 높은 논리적 완결성을 지닌 사상 체계를 이용해 정교하게 만들어낸 교리라는 거임. 그리고 당대 내노라하는 철학적 학식을 지닌 지식인이었던 교부들이 유대 민족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지우고 단순한 유대인들의 왕이었던 메시아를 보편적 구원자로 재탄생시키면서 매우 높은 개방성과 확장성, 그리고 압도적인 신학적 깊이가 있는 종교로 만들어낸 거고. 시작은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와 비슷한 수준의 얕은 깊이의 종교였지만, 온갖 철학적 지식을 흡수해서 살아남은 지금은 그때와 같은 급의 종교가 아니란 소리임. 맨날 기독교 비판으로 나오는 악의 문제? 이미 중세 시대 때 이거에 대해 설명한 게 한 트럭임. 물론 성경이 확정된 건 교부 시대 전이긴 하지만, 이미 그 때도 충분히 높은 수준의 신학적 경지에 이르렀음. 당장 요한의 복음서 1장만 읽어봐도 알 수 있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냥 지루한 선문답이지만, 공부한 사람이 보면 얼마나 이 책이 유대교의 지혜 전승과 그리스 철학의 논리를 이용해서 유일신 교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예수를 신으로 신격화하는지에 감탄할 거임. 구약 역시 마찬가지임. 전도서는 스토아 학파의 영향을 받았고, 지회서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로고스라는 개념을 창조와 연관시키기도 함. 이는 당연히 요한의 복음서에 영향을 주었고. 욥기는 악의 문제를 설명하는 좋은 책임. 


물론 이러한 배경지식 없이 성경 읽는 건 비추임. 유대교 특유의 묵시 문학에 대한 이해 없이 다니엘서를 읽거나 지혜전승과 헬레니즘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없이 전도서를 읽는 건 바보짓임. 하지만 성경 그거 하찮은 텍스트다. 호메로스, 그리스 철학에 비해 깊이가 떨어진다 라는 말은 동의하기 힘듬. 기독교가 지중해권과 로마의 국교가 된 건 우연이 아님. 그 이면에는 보편적 사랑을 노래하는 핵심 표어와 그 밑에 있는 깊이있는 신학적 뒷받침이 있기 때문임. 그리고 성경은 그러한 깊은 신학적 텍스트의 근본과도 같은 책이고. 나는 배경지식이 없이 원전을 읽는 건 추천하지 않지만, 그것이 성경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부정하는 건 아님.  최근에 독갤에서 읽은 만화에서도 이거에 대한 내용 다루고 있고 갑자기 성경 떡밥이 돌아서 한번 글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