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자 하지만 말하지 않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고자 하지만 보지 않으며
알 수 없는 것을 알고자 하지만 알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고자 하지만 느끼지 않는다
한줄요약
실재와 감각의 괴리는 표상 위에 부유한다
기사단장 죽이기 리뷰는 1권 리뷰, 2권 리뷰, 그리고 통합 리뷰로 총 3부작에 걸쳐 다뤄질 예정이다.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하는 이유는 그만한 가치와 감상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한 호평과 칭찬이 이어진다는 건 아니다. 그건 2권마저 덮으며 다 읽었을 때 깨달았다. 노르웨이숲처럼 심층적인 분석을 한다거나 그러진 못한다. 솔직히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지만, 거기에 쓴 방식은 내게 난해하게 다가왔다. 난해함을 난해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로선 결코 호평만 할 수 없다.
어쨌건 그런 얘기다. 그런데도 1권은 호평으로 가득할 예정이다. 1권이 좀 더 취향에 맞는 것도 있고, 하루키 특유의 개성이 참 잘 살아났다는 감상이 주이기 때문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나’가 유명 화가의 집(친구 아버지의 집)에 살게 되면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 그리고 그 전후를 다룬 이야기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가 아내 유즈와 헤어졌다가 다시 결합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스포인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는 초반부에 독백으로 나오는 내용이다. 최근에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담론과 엮어 생각하게 된 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인데, 나로선 그 담론의 입장에서 주인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얘기는 2권에 가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자.
전체적인 이야기는 사실 “남의 집에서 일어난 해프닝, 혹은 사건의 연속”이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하루키 특유의 1인칭 묘사와 관조적인 태도, 그리고 섹스어필로 인해 마냥 가볍게 흘러가지만도 않는다. 거기에 노르웨이숲에는 없는(내겐 비교대상이 노르웨이숲밖에 없음을 양해바란다.) ‘기묘함’과 ‘환상성’이 추가되면서 기사단장 죽이기만의 ‘어찌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1권에서 눈여겨 볼 키워드는 단연코 “기묘함”이다. 1권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이자, 하루키의 탁월한 묘사가 빚어낸 역동적인 핵심이다. 1권의 부제인 “현현하는 이데아”는 작품을 이루는 (그리고 나름의 장르 분간의 기준이 되는) 환상성을 의미하는데, 사실 1권에서 환상성은 “기묘함”의 증폭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여기서 묘사되는 이데아, 환상을 비롯한 모든 ‘현실의 것’이 아닌 것들은 기묘한 분위기 아래에 자연스러울 정도다. 마치 그런 게 마땅한 것처럼.(여기에 하루키 특유의 방점을 찍어주면 더욱 좋다.)
그리고 1권에서 기묘함의 증폭제이자 근원은 멘시키 와타루에게 있다. 이 인물에 대해선 할 말이 꽤 있지만, 인물과 관련해서는 통합 리뷰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 리뷰는 1권에 대한 감상, 곧 1권만 읽었을 때(그리고 노르웨이 숲 말고는 하루키의 다른 작품을 모를 때,) 유효한 감상이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세계는 불확실의 세계다. 묘사는 하루키답게 자세하고 실감나지만(차량, 음악, 풍광 등 따위가), 서사의 흐름이나 전개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괴리돼 있다. 실제로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말할 수 없다”고 할 정도다. 다만 정리는 해볼 수 있는데, 1권에서만 묘사된 관계는 다음과 같다.
1. 나-여동생(고미) / 2. 나-멘시키 / 3. 나-아내(유즈) / 4. 나-마리에 / 5. 나-(멘시키-마리에) / 6. 나-이데아(기사단장) / 7. 나-아마다 도모히코(집 주인) / 8. 나-아마다 마사히코 / 9. 나-여자친구(유부녀)
무려 9개다. 9개가 기묘하게 얽히고설킨다. 사건도 현상도 표층 위에 비치는 모든 게 “실재”함에도 그 사이사이의 연결고리는 난해하고 미약해서 도저히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부족한 개연성, 작위성은 디테일한 묘사로 끌어낸 “기묘함”으로 메운다. 어찌보면 이 모든 관계와 사건, 전개가 복잡한 우연에 의해 엮인 점에서 우다영이 생각났다. 하지만 우연을 다소 의식하고 집중해서 다루는 우다영과 달리 1권에서의 우연은 묘사에 있어서 “세계의 무작위성”을 그대로 가져온 느낌이다.
그건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나’가 초상화에 재능을 가졌고, 그 초상화를 보고 멘시키가 흥미를 가졌으며, 그 멘시키가 마리에에게 흥미를 보이고 ‘나’에게 초상화를 의뢰한 것. ‘나’가 아내 유즈와 헤어지고, 대학 동문인 마사히코의 아버지가 집을 비우게 되면서 ‘나’에게 집을 맡기게 된 것. 도모히코 집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작품을 접하고 멘시키의 도움을 받아 잡목림 속 구덩이를 파헤치게 된 것. 그 모든 게 기묘하다. 하지만 자연스럽다. 불규칙한 움직임들이 맞물리면서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를 기대하게 만든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재밌었다. 기묘함이 호기심을 최대로 자극하고, 연관 없어보이는 이야기가 서로 조금씩 영향을 주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1권에서 마땅히 밝혀진 건 없다. 밝혀지더라도 그것이 더 큰 의문과 호기심을 일으켰다면 그건 “밝혀졌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오히려 1권에서 끝났기에 이만한 호평이 나온 걸지도 모른다.(그리고 실제로 2권에서 나는 1권만큼의 호평을 할 수 없게 됐다.)
하루키가 관계들을 엮는 솜씨를 보면 스릴 서스펜스를 써도 잘 쓰지 않을까 싶다.
P.s. 하루키 특유의 방점을 리듬감 있게 읽다보면 은근 재미나다. 나스 키노코가 생각나기도 하고.
기사단장 죽이기 1권 등급표
필력: A+
독서 과정에서 느끼는 총체적인 평가, 곧 작품 자체에 대한 인상. 나머지 6개의 기준을 모두 합친 또 하나의 전체적인 기준.
가독성: A+++
문장을 읽을 때 글이 얼마나 잘 읽히고 술술 넘어가느냐를 기준으로 삼음. 본인 어휘력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으니 주의.
인물: A
주인공을 비롯한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개성, 매력, 혹은 대사 센스, 유머까지, 곧 작중 인물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잘 써내고 잘 활용하느냐에 대한 기준.
설정: B+
장르별로 기준의 정의가 다르게 작용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배경되는 시공간과 전후상황 등의 설정들이 가지는 매력과 활용도가 기준.
분위기: S
말 그대로 작품에 깔리는 분위기. 전체적인 분위기, 각 파트별 분위기, 분위기 전환 등의 '장면 인상' 위주의 기준.
구성: A
책 자체의 구성(목차), 문단 구성, 사건 구성, 사건의 흐름, 배치, 플롯으로 퉁칠 수 있는 부분까지. 소설의 골격에 대한 기준.
문장: S
필력이 소설이라는 군집적이고 총체적인 문장의 인상이라면, 문장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을 가리키며, 흔히 부르는 묘사도 여기에 포함.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1권은 진짜 ㅅㅌㅊ임 2권에서 갑자기 장르변경에 가깝게 틀어져서(예고된 것이긴 해도) 호불호 씨게 갈리는 거 빼면...
이책은 진짜 뭔말하려는지 모르겠었음...나오자마자 샀었는데 지금 읽으면 다르려나
나도 첨 읽었을 땐 몰랐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까 이해는 되더라. 2권이 워낙 난해하고 호불호 갈려서 그렇긴 해도... 메시지 자체는 공감했음.
@창궁 뭔 메시지인데?
2권 리뷰줘 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