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작가진 중에 대표적인 인물. 이탈리아 반도 출신으로 르네상스 문학에 선구자급이다.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가 이것의 파생작이랬는데, 액자식 구성인 건 같았으나, 문학성은 캔터베리 쪽이 더 나았다. 이것은 너무 이야기 소재의 기발함에 의존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요재지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소설이 등장하기 전에 구전문학이 먼저 있었을텐데, 즉흥적으로 기지있게 소일삼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푸는 사교형태의 구전이 세계 곳곳에 있었을 것이다. 술이나 한잔 곁들이거나 분위기에 흥이 돋았거나 그런 경우에 의해서다. 처음 시도는 그런 이야기를 모아둔데서 비롯된것 같다. 초서나 단테와 비교하면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에 대한 인용이 현저히 적은 것 같다. 단테는 거의 지옥 도입부부터 그런 인물들을 끌어내고, 아예 길잡이가 베르길리우스니 고대문화에 매혹됐음이 확실히 드러나고, 초서도 액자식 이야기 중 하나가 그리스이거나 철학자 특히 세네카에 대한 인용이 많았다. 보카치오의 작품은 관능적인 이야기가 많은 점에서 세속적이나 그리 교양 높다고 평가는 하기 힘들다. 고고한 인상의 단테나 초서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그렇게 처음 시도가 즉흥적인 재담을 엮었다는 것 자체가 문학으로서 치밀하고 정교하진 못한 것 같다. 재담은 재담일 뿐. 그것으로 훌륭한 문학을 만들기 힘들것이다. 작품 하나 쓰기에 5년 걸리기도 하고, 각고의 노력과 인물에 대한 관찰력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너무 이야기가 산만한 느낌이고, 인물의 초점이 바뀐다. 나로서도 그렇게 바뀌니까 인물에 대해 애정을 갖기 힘들었다. 캐릭터성보다 이야기 자체에 익살과 재치에서 재미를 느껴라는 것인데, 하나의 인간을 창조하는 것에 비하면 잔재주에 불과하다. 인간을 하나 창조하려면 고도의 관찰력을 요구하고, 르네상스 인본주의 운동에도 더 합당한데, 데카메론은 그에비해 너무 자질구레한 느낌이였다. 수다처럼 가십이나 캐고 남에 치정이나 관심 가지는 것은 고도의 관찰력의 흔적이 아니다. 깊이감 없고 피상적이고 남걱정이나 하며 자기에게 성실함에 소홀히함의 증거이다.


소위 가십이나 남의 사정 걱정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관심사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재담꾼도 인간을 재밋게 해주는 데 관심이 쏠려있고, 가십에 관심 가지는 사람도 남에 경제적 사정이나 치정이나 여타 자질구레한 것들 인간에 대한 투명한 관찰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고, 미학적 성취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결국 소설이란게 인간을 거울삼아 뭔가 의미나 소득이 있어야하는 데, 그런게 결여되어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남 의식하고 남 사정에 알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은 과시욕도 많아 남을 깍아내리는 험담을 하여 충족 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것 자체가 추하다. 사소한 재담꾼으로서 기교는 있어보이지만 문학작품으로서는 어설픈 작품이였다. 어쩌면 통속극이야말로 세속으로 가는 하나의 길이자 과정이였을지도 모른다. 문화가 미개한 시절에는 보잘것 없는 것에도 큰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옛날에도 잡기 파는 예능인들 다 있었다. 재담도 돈주고 파는 예능인도 있었다. 그게 기록문화로 남겨진다면 문화재가 되고 의의가 있을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