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제공되고 있는 비평 이론의 대다수는 해석 이론들[라캉의 정신분석학,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 데리다의 해체 이론, 들뢰즈의 리좀 이론]이다. 이 이론들은 예술 작품들로부터 작품의 의미를, 경우에 따라서는 의미의 징후를 파악해내는 데 대한 이론들이다. 이 이론들은 해석을 비평을 주된 과제로 간주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평가, 특히 해당 예술 작품이 속한 예술적 범주 혹은 장르에 입각한 평가가 비평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평가가 예술 비평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나의 입장에 비해 오늘날의 지배적인 비평 이론들 다수는 해석을 비평의 핵심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평가만 포함되어 있다면, 심지어 해석 없는 비평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론에 기대는 현대의 비평가들은 내가 방금 언급한 방식의 대비를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들도 매우 특별한 종류의 평가ㅡ즉, 정치적 혹은 이념적 평가ㅡ에 빈번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즉, 그들의 해석은 자주 성차별주의, 계급주의, 이성중심주의 등의 관점을 취하는 작품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대답은 꽤나 그럴듯하다.

그러나 나와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차이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예술적 평가ㅡ예술적 범주의 입장에서 내리는 평가ㅡ가 근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현재의 지배적인 비평 이론들은 정치적 평가가 일차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예술적 평가는 심지어 의심스러운 것이라고까지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정치적 평가는 결코 적절한 비평의 차원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좀 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란, 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비평함에 있어 예술적 평가를 하는 것은 언제나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대다수의 지배적인 비평 이론에서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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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비평에 대한 나의 견해와 오늘날의 많은 해석에 관한 이론들 사이에 주목할 만한 차이가 하나 더 있다. 후자의 이론들은 대개 사람의 의식이나 의도 아래에 놓인 과정들의 작용ㅡ예를 들어 무의식이나 생산력의 작용, 아니면 언어 그 자체의 작용ㅡ이 작품의 의미로 인도하는 왕도가 된다고 보고 그런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나는 가치를 창조하는 개별적 주체로서의 예술가, 그리고 그러한 예술가의 의도적 산물로서의 예술 작품에 훨씬 더 강조점을 둔다. 그러므로 많은 비평 이론가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탈인간 혹은 심지어 반인문주의 비평(즉, 인간이라는 행위 주체를 중심에 두지 않는 비평)에 관여하는 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비평에 대한 생각은 의도주의적 관점에서 본 예술가의 성취가 가장 주된 비평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고집스럽게도 인간적이고 인문주의적이다.

이 책을 인문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이 모든 예술 작품에 대한 하나의 일반적인 혹은 이론적인 접근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작품들을 그들 고유의 조건ㅡ예를 들어 역사적 맥락이나 그것들이 속한 범주ㅡ에 따라 평가하는 것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비평을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소위 탈인간 과학의 도구가 아니라 인문주의적 분과의 하나로 옹호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다양한 약호들이나 기호 체계들 혹은 권력 체제들에 대한 임상적 해부에 가까운 행위나 해석을 비평으로서 옹호하지 않는 대신 비평의 첫 번째 소임을 가치의 발견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을 인문학 혹은 인문주의의 연습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평가가 비평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인간 가치와의 뗄 수 없는 연결이 있는지가 인문학의 한 분과가 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가치와의 연결이 바로 나의 인문주의적 신념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읽으면서 알게 되겠지만, 비평에 주목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비평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모든 사람을 비평가로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비평가란 예술 작품을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사람이다. 이유를 가지고 자신의 평가를 뒷받침하려고 하는 한, 학자이건 기자이건 그 외의 또 다른 종류의 예술에 관한 저술가이건 다 비평가이다. 반면에 단지 이러저러한 것이 좋거나 나쁘다는 식으로 선언하기만 하는 전문가는 비평가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많은 리뷰어들이 비평의 영역에서 배제될 것이다.

내가 제시한 비평의 영역 밖에 놓인 '비평가'로는 소비자 리포터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쇼나 책 또는 영화에 대한 자신의 선호를 기록하여 읽는 이들이 그것을 이용해 자신들의 선호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또한 내 견해에 따를 때, 글 쓰는 이가 주어진 예술 작품을 희화화의 소재 그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 역시 또 다른 부류의 '되다 만' 비평가이며 그런 글은 비평의 영역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 마치 마음껏 놀려댈 수 있는 기회나 잡은 듯 새로 방영되는 텔레비전 시리즈를 꼬집어대는 비평가가 있다. 이것은 빈정대는 것이지 비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