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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 유형원은 조선 후기 실학의 시초로 불리는 학자다. 이 책은 실학 연구를 중점으로 하는 재단법인 실시학사에서 유형원에 대한 논문들을 편집한 것이다.
유형원은 조선후기의 토통을 중심ㅇ으로 하는 도학보다 경세론에 중점을 뒀던 학자이다.
그도 성리학자이기에 심성론 등에 대해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주자의 견해를 따르기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실리(實理)를 중시하는 심성론을 주장했으며, 송시열의 강상윤리와 부세제도 이정을 중점으로 하는 국가재조론(國家再造論)보다 적극적 방식의 국가재조를 주장하였다. 송시열과 마찬가지로 복수설치를 주장했지만 좀 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공전제는 주나라의 정전제를 모델로 하면서도 이를 현실적으로 변용하였다. 사, 농, 공, 상을 모두 국가의 생산 집단으로 인정하면서도 사족에게는 우대를 하였다. 다만 공전제에 기반한 생산수단의 균평은 부세제도 균평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반계는 생각하였기에, 사족에 대한 우대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었다.
그는 국가가 공전제의 원칙에 따라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고 이를 수령 등의 관리 하에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면 국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반계수록에서는 화폐 유통과 시장 설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중농억상이 일반적 관념이었던 당시에 상업과 화폐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이는 유형원의 영향을 받은 실학자인 성호 이익과는 비교되는 지점으로 성호는 철저한 농본주의 이념 하에 성업 억제를 주장했다.
반계수록은 국가 전 분야에 걸친 반계 개혁론의 집대성으로 이는 이후 이익의 성호사설, 정약용의 경세유표로 이어진다.
비록 탕평파인 양득중과 홍계희,,영조와 정조가 반계수록에 관심을 보였지만, 부세제도 이정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선 후기의 상황에서 반계의 적극적 제도개혁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반계의 개혁론은 국가재조와 복수설치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있었고, 당시 조선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었다는 점에서 사상사적 의미가 남다르다.
그를 실학의 시초이자 비조로 평가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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