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과 미소 냉전이라는 두 대전의 틈바구니에서 진행된 한반도 분단에서 한국 민족지도자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38도선에 의한 미소의 분할점령이나 냉전의 발흥이라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남북한 지도자들에게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 지도자들 이상으로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분단을 피하기 위해 이승만이나 김구가 솔선해서 소련의 요구를 수용하고 김일성이 이를 존중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이야말로 핀란드의 방식이었지만 1939년 '겨울전쟁'에서 보여 준 격렬한 저항이나 파시키비(J. K. Paasikivi)의 사려 깊고도 통합적인 리더십은 핀란드 고유의 것이었다. 이승만도, 김구도, 김일성도, 그리고 박헌영도, 여운형도, 김규식도, 조만식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반도 분단의 기원에서
마지막 문장이 제일 쓰리다.
한반도 분단의 기원에서
마지막 문장이 제일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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