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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거대한 공룡 화석과 큐레이터라는 제목에 흥미를 느껴 거의 1년쯤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있던 책이다. 책이 꽤나 고가였기에 선뜻 구매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스24 북클럽에 이 책이 떠서 눈물을 흘리며 북클럽을 구독하고 저렴한 가격에 이 비싼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예스24에 감사를 보낸다. 아래 사진의 감수자 추천사를 읽어보니 이런 독특한 주제를 다룬 책은 나 같은 사람들이 아니면 고를 일이 별로 없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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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감수한 이정모 관장의 추천사 일부. 진화, 자연사, 인류사라는 키워드에 관심 없는 사람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실제로 난 열거한 저자들의 책을 최소 한 권씩은 다 가지고 있어서 족집게다 싶었다.>



인류문명 초기의 박물관은 그저 소장품을 전시만 해 두는 먼지투성이 창고로만 여겨졌다. 인류가 모험의 19세기를 거치며 각지의 탐험가와 과학자들이 기증한 표본과 소장품들이 박물관에 점점 쌓이게 되었는데, 이렇게 박물관의 소장품 종류가 늘어나면서 이 소장품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관리할 만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직원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각 과학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대학교수와 맞먹는 지위를 가진 직업으로 차츰 변모하게 되었다.


오늘날 큐레이터들은 세계 각지를 탐험하며 박물관에 소장할 표본과 소장품을 모으고, 대학 및 기타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연구 등 학술 활동을 진행하며, 박물관에서도 지속적인 전시회 개최 등으로 대중에게 과학적 교육 및 이해를 돕는 일을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큐레이터는 과학자인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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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단순히 박물관을 관람하러 온 관광객들에게 이러저러 설명해 주는 관광 가이드 같은 역할만 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3대 자연사박물관 중 하나인 필드 박물관에서 40년간 근무한 고참 큐레이터인 저자가 소개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내 막연한 짐작과 달리 굉장한 역할과 임무를 맡은 직업이었다.


또 과학자들이라면 전부 연구소나 대학에만 몸담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자연사박물관에서도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더구나 내가 알던 많은 과학 책 저자들 역시 대학교수가 아닌 큐레이터이거나 큐레이터 출신이라고 한다. 한때 꿈이 과학자였고 아직도 과학에 관심이 많은 내가 여태 그런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니 부끄러우면서도 놀라웠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오늘날의 큐레이터가 뭐 하는 직업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대중의 이해를 돕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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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꿈이 없던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 읽으면서 너무나 부럽고 설레는 내용이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엔 고생물학과 교수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저자는 본인이 큐레이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고, 큐레이터가 무슨 일을 하는 일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본인이 겪은 전 세계를 넘나드는 모험과 국제 연구, 동료 큐레이터 과학자들의 재미난 일화, 저자 본인이 몸담고 있는 필드 박물관의 역사 및 소장품에 대한 이야기, 그중 특히 미국 필드 박물관의 상징이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완전한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 표본인 'SUE'가 필드 박물관으로 오게 된 이야기 등등 과학도가 꿈이었던 나에겐 너무나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설명해 나간다. 책은 과학 책이라기보다는 과학자이자 큐레이터가 쓴 자전적 에세이에 가깝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20대에 이 책을 접했으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러 번 상상하게 했다. 나 역시 저자처럼 딱히 재밌지도 않고 재미없지도 않던 행정학을 정해진 궤도를 따라 달리기만 하듯 배웠지만, 저자처럼 어릴 적 열정이 되살아나 과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운명적인 기회는 아쉽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대리만족하며 유난히 재밌게 읽어나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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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각 챕터 끝에는 여러 컬러 삽화들이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다. 대부분이 저자나 동료들이 직접 촬영한 것들이어서 인터넷 서핑만으로는 찾아보기 힘들만한 사진들이 많았다.>


저자 본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같은 필드 박물관에서 지내는 동료들과 그 동료들이 겪은 재미난 일화에 대해 설명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파충류학, 절지동물학, 조류학, 식물학, 인류학, 어류학, 지질학 같은 평범하고 익숙한 분야는 물론이고 고대 화석 속에 들어있는 운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고대 운석학 전문가까지 나온다. 먼 옛날에 지구에 떨어져 화석화된 운석을 연구한다는 상상도 못 해보던 분야였는데, 이 또한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싶었다. 특히 필드 박물관의 선대 큐레이터였던 K.P. 슈미트가 남긴 '죽음의 일기'는 섬뜩하면서도 죽음조차 꺾을 수 없던 불굴의 탐구심을 보여준 진정한 과학자로서의 귀감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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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운영 예산은 대부분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충당된다고 한다. 저자가 활동하는 필드 박물관에서 세계 최대 크기의 티라노사우루스 화석 표본인 'SUE'를 확보하게끔 하려고 여러 후원자들이 후원금을 보탰고, 그 이후에도 계속적인 후원을 보내오는 후원자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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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표본을 보관하기 위해 증축하는 필드 박물관의 모습. 무려 우리 돈 1000억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고 하는데 이 공사비 역시 대부분이 후원금에서 나온다 하니 놀랍다.>


또 흥미로웠던 부분은 자연사박물관이 운영되는 행정적인 과정 및 각종 부서 소개, 그리고 박물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이 어떻게 충당되는지 설명한 부분이었는데, 박물관 전체 예산에서 박물관 입장권과 기념품 판매, 박물관 내 식당 운영 등으로 나오는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고 개인이나 재단 혹은 익명의 후원자의 후원금을 통한 수익이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책의 여러 부분에서 후원자와 박물관과의 관계가 자주 다루어지는데, 이 후원자들은 박물관 일을 내 일처럼 소중히 여기며 박물관의 성공을 열망하고, 과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들로 보인다. 애초에 저자가 일하는 필드 박물관의 이름부터가 박물관 설립에 크게 기여한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미국이란 나라에선 자연사 박물관에 대한 이런 광범위한 기부와 후원이 일상화된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책을 읽으며 말년에 부자가 된 내가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에 후원하여 박물관을 통해 학술 연구에 이바지하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공상을 펼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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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오늘날 큐레이터의 임무는 자연보전 쪽으로 맞춰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여러 생물학적 표본을 수집하는 것이 자연사 박물관의 주 임무였으나, 자연 파괴로 생물 다양성이 급감하면서 자연사 박물관의 존립은 물론이고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미래가 직접적인 위험에 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세계 유명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제각각 환경보전을 위한 대응 팀을 만들어 현지 탐사 및 연구를 통해 세계 각 정부가 특정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게끔 하는 활동을 진행한다고 한다. 위 사진은 필드 박물관의 자연보전 대응 팀의 성과를 보여준다.


전 세계를 누비며 오지를 탐험하고, 동료들과 연구하고, 과학에 이바지하며, 자연보호에 앞장서고,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힘쓰는 큐레이터들.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슈퍼 히어로가 아닐까? '지구를 탐험하기엔 너무 늦게 태어났고 우주를 탐험하기엔 너무 일찍 태어났다.'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큐레이터가 된다면 지구상에 아직 탐험할 장소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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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 책을 썼다. 인생의 황혼에 서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사진 속 저자의 말처럼 "나의 삶이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했고, 발견과 성취감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으며, 이렇게나 보람찬 커리어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축복이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말 부럽다. 과연 나도 말년에 저자처럼 내 인생을 되돌아보며 나의 삶이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했고 축복이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나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큐레이터가 되었어야만 했다...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훗날 성공해서 박물관의 후원자가 되고 싶다. 자연사 박물관의 후원자가 된다는 것 역시 나에겐 굉장히 보람찬 일일 테니까.


크리스마스 연휴에 읽을 책으로 이 책을 골라 읽었는데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과학도를 꿈꾸는 사람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줄 만한 책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이나 대학생들에게 읽게 한다면 참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