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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가 쓴 다른 책처럼 좀 민감한 이야기라 반응 뜨거워지면 삭제할 예정
미리 밝히고 넘어가지만, 나는 나치를 긍정하거나 미화, 혹은 그 전쟁범죄를 축소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문장이 얼마나 정직한지에 대해 확신을 심어줄 수는 없으니 이 정도로 그치고 하고자 하는 말을 하자면, 단순하다. 이 책은 내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의 수많은 사상자에 대해 가졌던 연민에 상당한 변화를 줬다. 그 연민은 소련이라는 국가나 그 거대한 숫자보다는, 개별적인 사람들, 특히 최초의 가해자였던 소련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름조차 뺏긴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테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가졌던 의도도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제목인 <피에 젖은 땅>, 원제 블러드랜드는 책에서 다루는 대량 학살이 있었던 장소들, 현재 세계 지도에서 폴란드, 우2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3국 등이 위치한 장소를 가리킨다. 이곳에서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나치의 수많은 전쟁 범죄들이 있었고, 전투 중의 사상자를 제외하더라도 상당수의 민간인 피해자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물론 이를 알고 있고, 이런 끔찍한 일을 야기한 나치즘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치즘이라는 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며 이를 더 큰 분류, 전체주의에 묶기도 한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이 전체주의라는 분류에는 공산주의(좀 더 엄격하게 분류하자면 스탈린주의를 포함한 공산주의의 몇몇 분파라고 해야 할까?)가 포함된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좀 더 생각해봤어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 <냉전의 지구사>를 읽다가 상당히 흥미롭고 인상적인 구절을 봤었다. 정확히 인용할 수는 없지만, 소련은 특이하게도 자국 내의 영토를 식민지로 삼은 국가였다는 내용이었고, 어째서 그렇게 표현할 만한지에 대해 상당한 서술을 할애했었다. <피에 젖은 땅>은 그 내용을 보다 더 깊고 노골적으로 파고들며, 단순한 정복 전쟁 이상의 무엇이 있었기에 이를 식민지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가혹할 수준의 식량 징발과 그로 인한 대기근, 혹독한 민족 정체성 박탈과 이를 위한 기존 엘리트 질서 붕괴, 그리고 새롭게 자리 잡은 냉랭한 새 질서 속에서의 수많은 숙청들. 한국인이라면 묘하게 익숙할 만한 내용들이다. 익숙할 만하다.
실제로 저자는 블러드랜드에서의 죽음을 하나로 묶은 뒤, 이를 여러 시기의 단계로 분류해서 설명한다. 소련 영토 내에 있었던 시절의 말살 정책, 소련과 나치 독일이 합작해서 이뤄지던 국가 붕괴, 그리고 나치 독일 점령기 시절의 유대인 학살로. 이들은 단순히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기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건들이 후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돕거나 강한 영향을 주었고, 소련과 나치의 실용적 동기가 서로 비슷했기에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이 동기는 좁게는 제국의 확장과 경제 부흥이고, 넓게는 인명 천시의 풍조다. 후자는 점령지에서 각국이나 개인들이 고를 수 없는 대안이 없도록 강제했고, 이는 폴란드 분할 합병 시절의 정책과 나치 점령 후 시민들의 수월한 협조, 그리고 빨치산 합류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이 일련의 사건들이 나치만의 문제가 아닌 두 전체주의 정권의 합작이나 다름 없는 것이라 전제한다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소련의 2차 대전 중 사상자 호소에 대한 문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서두에서 언급했듯 소련의 뻔뻔함을 느꼈다. 물론 소련 영토 전체에서 그만한 사상자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지역들은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도 전부터 소련 내에서 직접 사람들을 말려 죽이던 곳들이다. 전쟁 중에도 역시 더 많은 사상자를 반쯤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제 피해를 민간인에게 전가시키도록 하는 빨치산 전술과 후퇴를 금지하는 형벌 부대의 운용으로 나치만큼은 아니더라도 소련 역시 그 피해 규모의 책임을 어느 정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는 이후 소련 내에서의 유대인 탄압 시도와 소련의 사상자 규모를 통한 세계 대전 승전에서의 지분 요구 등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심화된다.
하지만 그건 그럼 또 무슨 문제인가? 저자는 여기에서 희생자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한 민족주의 정치를 불러온다. (최근 임지현 교수가 낸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도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아 한 번 읽어보려고 한다.) 이 피해가 현대까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부풀려지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분쟁을 불러오려고 한다면 이 문제는 단순한 사료 해석의 문제를 떠나 현실정치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블러드랜드에 속한 수많은 국가들은 실제로 이 단계를 밟고 있고, 유대인 학살 문제를 축소하면서 동시에 일반적인 피해 수를 부풀리는 것으로 민족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블러드랜드를 기존과 조금 다른, 폭 넓고도 의미심장한 시각으로 재조명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P. S. 책을 읽으며 웃겼던 구절이 몇 개 있었다.
"다른 연합국 지도자들처럼, 스탈린도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때문에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히틀러는 연합국이 유대인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고, 따라서 (국민이 이 주장에 동조할까 우려하던) 연합국은 자신들이 억압받는 국가들(하지만 특히 유대인은 아닌)을 해방시키고자 싸우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야 했다."
정말 다들 얼마나 유대인을 싫어하는 걸까? 팔레스타인 공습을 하는 이스라엘이라도 미리 보고 온 걸까?
"독일이 점령한 여느 소련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벨라루스 인민 대다수가 차라리 과거 소련의 지배를 바라게끔 하는 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벨라루스로 파견된 한 독일인 선전 전문 요원은 자신이 이곳 인민들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는 보고를 올리기도 했다."
이것과 주어만 소련으로 바뀐 동일한 표현을 <1945>를 읽으면서 봤다. 서로 어찌나 닮았는지!
우3크라이나 금지어?; 이 글 안 쓰는 게 나앗나
결국 스탈린=히틀러=극단적민족주의자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대담하고 직접적인 리뷰 잘 읽었어. 송동훈씨가 쓴 대항해시대의 탄생에서 15세기에 벌어진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반유대인 정책을 소개하는 부분을 읽어보면, 유럽의 뿌리깊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