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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잔 벅 모스, "헤겔, 아이티, 보편사"

도서관에서 철학 코너를 쭉 훑다가, 아주 우연히 눈에 띄는 제목을 찾았다.
헤겔, 아이티, 보편사.

확실히 그렇다. 헤겔과 프랑스 혁명의 관계는 유명하다.
그러나 헤겔의 전성기는 아이티 혁명에 가깝다.
헤겔은 아이티 혁명에 영향받았을 것이고, 이 책도 그러한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보편사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빌려 읽었다.
결과적으로 올해 읽은 책 중에 최고의 책이었다.
거의 10년간 갖고 있던 내 회의주의적-포스트모던적 역사인식을 다시 보편사로 돌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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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음의 두 파트로 구분된다.

1. 헤겔과 아이티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은 아이티 혁명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이 부분은 추리소설처럼 전개된다.
여기만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헤겔의 비유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이티 혁명이 저평가받고 무시된 역사, 그리고 왜 다중의 근대성이나 근대성의 해체가 아니라 보편사를 회복해야 하는가.

2. 보편사
이 부분은 앞 부분의 마지막, 보편사의 회복에 대한 보론이다.
앞의 것에 비해 상당히 어려움.
보편사는 파국의 공간에서 생겨난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인정이 결여된 잡색 무리들은 인종, 성별, 계급과 상관 없이 모여 새로운 보편적 자유의 기획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그들의 의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 없다. 보편사는 파국의 공간에서 생겨난다.
18세기 당시 그 공간은 대서양 연안이었다.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잡혀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노예들과 뒤섞이고, 노예와 다름없는 선원들, 해적들, 매춘부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싹틔운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촉발한 아이티 혁명은 바로 그것이 실현된 장소였다.(헤겔 식으로는 자기의식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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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노동계급의 보편적 세상을 꿈꾼 마르크스주의는 실패했고,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선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자유주의도 세계에 보편성의 기준을 세우지는 못했다.
어쩌면 인류의 분열과 실패만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백인과 유럽 중심의 세상, 배타적 민족주의의 부흥, 국가와 종교 갈등의 심화.
이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 백인-서구 중심주의에 대항하는 이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보편성을 해체하려고 한다.
혹은 다중의 근대성을 통해 보편성을 포기하고 근대성만을 취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답일까?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다시 세울 수는 없을까?
저자는 그 답을 아이티 혁명의 선례에서 찾는다.
국가와 민족, 종교, 인종, 언어,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오직 자유와 평등의 가치에 연대한 진정한 혁명.
그것은 아이티가 파국의 공간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저자는 아이티 혁명과 18-19세기 '보편사'의 한계를 잊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노예는 해방되었지만, 노동자는 '자유로운 노예'가 되었다.
아이티의 투생과 데살린은 노예제를 철폐했지만, 그들의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노예와 군대의 규율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새로운 보편사가 싹트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아이티 혁명 지도자에 맞서 파업했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여성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페미니즘적 구호를 최초로 외쳤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보편사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언젠가 극복되어야 할 것이더라도 말이다.
지금이 파멸과 혼란의 시대라면 더욱 절망할 필요 없다.
새로운 보편사, 더 나은 인류를 향한 발걸음은 파국에서 시작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