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결산
인상 깊은 책 10개만 뽑아봄 (전부 문학임)
1. 제임스 조이스 – 율리시스
어문학사 김종건 번역은 미주라는 큰 결함이 있어서, 동서문화사 김성숙 역으로 일독함. 역자가 제임스 조이스 학회 회원이고, 가독성과 유연성을 고려할 때 전체적으로 읽기에 나쁘지 않음. 해석과 주석도 풍부해서, 무리 없이 읽었음. 율리시스가 무진장 난해하다는 통설이 있는데, 막상 펴들면 못 읽을 정도는 아님. 분량은 합 1,200페이지. 조이스 전처가 말한 대로 조이스는 머릿속이 엄청 지저분한 사람임. 죽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한다는 식의 코멘트를 남긴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는 직접 읽고 판단하는 게 나을 듯.
2. 존 쿳시 - 마이클 K의 삶과 시대
쿳시 팬이라면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는 작품. 문학동네에서 재간해준 덕에 처음부터 새로운 번역으로 접함. 문장의 밀도가 높고, 묘사가 사실적임.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임레 케스테르의 운명,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적절히 짬뽕한 느낌임. 밑바닥 생활자의 진득한 인생사를 체험하고 싶다면 추천함.
3. 시몬 드 보부아르 – 아주 편안한 죽음
보부아르는 사회철학자로서도 괜찮지만, 소설가로서도 손색없는 인물임. 사르트르를 읽을 땐 실존주의 철학과 작품의 주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는데, 보부아르는 그걸 근사하게 해냄. 사회철학자로서의 평가를 소설에 이전시키지 않고도 성공한 책.
3. 장정일 - 아담이 눈을 뜰 때
장정일에겐 두 가지 수식어가 있음. 평론가들의 기술을 빌리자면 ‘악마적 결벽성으로 사회의 위악성을 폭로하는’ 시인이자, ‘자해적 테러리즘’에 빠져 들어 있는, 독특한 문학 세계를 가진 중견 작가임. 장정일 문학의 최고 성취는 이 단편집이라고 봄. 10권의 독서일기와 인터뷰집, 시집, 장편 소설도 좋지만, 단편집, 희곡집도 숨겨진 보물 중 하나임. 일탈을 그리는 능력에 있어선 무라카미 류와 소설적으로 도플갱어라고 생각함.
4. 마츠오 바쇼 – 하이쿠 선집
문학 소년이라면 일본의 정형시인 와카와 하이쿠에 대해선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임. 바쇼의 매력은 사물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운문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에 있다고 봄. 에리히 프롬도 소유냐 존재냐에서 바쇼의 시에 대해 자세한 코멘트를 덧붙인 적이 있음. 민음사 세계시인선 추천한다.
5. 필립 로스 – 전락
분량을 고려하여 대표작으로 넘어가기 전에 읽은 책. 전형적인 욕정과 사랑 이야기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자매품 쯤 될 듯.
6. 르 클레지오 – 황금 물고기
처녀작인 조서보단 덜 파괴적이고, 덜 난해하다. 막상 자국에선 대표작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충분히 읽을 만하다고 생각함. 성장 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음.
7. 빅토르 위고 - 파리의 노트르담
레 미제라블에 비해 정말 힘겹게 읽음. 곁길로 새는 게 프루스트보다 더함. 대신 작품이 미로처럼 짜여 있진 않고, 줄거리도 단순함. 엮은이에 의하면 ‘역사 대하소설’쯤 되는 모양. 디즈니가 각색한 노틀담의 꼽추하곤 완전히 별개의 작품으로 보는 게 맞을 듯. 93년하고 웃는 남자까지 읽어야 위고에 대한 총평이 가능할 듯싶다.
8. 오에 겐자부로 –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오에의 첫 장편. 감화원 아이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돈다는 내용임. 오에의 중기 작품이 ‘상상력과 신화가 혼재된 세계’를 그려냈다면, 초기작은 전형적인 리얼리즘에 가까움. 후기작은 사소설의 형식을 차용했고, 세상에 대한 저항감이나 날카로운 통찰이 점점 무뎌지는 느낌임. 반면에 에세이는 후기로 갈수록 더 농도가 깊어짐. 호불호에 따라선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보기도 하는 듯.
9. 미우라 아야코 – 빙점
내한테 ‘소설은 본래 이래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최초로 심어준 책임. 작품성이나 주제 거르고 그냥 재밌음. 속편도 곧 읽게 될 듯
10. 김광림 – 날 보러 와요
총 19장으로 이루어진 희곡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모티프고, 드물게도 주제의식이나 교훈을 강요하지 않음. 부조리극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권함.
올해도 작년처럼 마음이 가는 대로 읽을 생각.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