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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전에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단테와 스위프트의 공통점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초서도 외교관으로 정치적 공직에 몸담은 경력이 있따. 동양권으로 치면 소동파, 왕유, 백거이 등도 벼슬하였는데, 물론 시서화가 전통적인 상류층 소양이긴 했지만 정치인들이 문학적 재능이 없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할 강력한 반증을 제시한다. 현대에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탈린과 모택동이 시인이기도 하였다. 왜 오늘날 정치인 중에 문학적 취향이 부각되는 정치인이 별로 없는걸까. 대통령은 더욱 그렇다. 스탈린과 모택동은 독재자고, 스위프트와 단테는 현대식 민주주의 체제라고 보기 힘들다. 현대식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대부분 법률가로서 그런 분야에 전문화 된건지 아니면 국민들과 호흡 맞추도록 수준이 평준화 된건지 모르겠으나, 고대 민주정에도 극시인으로 유명한 소포클레스도 정치인 경력이 있다. 그 때는 노예제도 있고 국제인권법도 없던 야만적인 시대라 오늘 날과 기풍이 좀 다를 것이다. 현대인이 고도로 전문화 됐다는 말도 의심스러운데, 그렇다면 문학도 전문화 됐어야하는데, 아직도 단테를 능가한다고 자부할만큼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어쩌면 그 전문화에 대해서 자기들이 못하고 모르는 분야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포장한 진짜 고대식 미신에 기반하여 있는 것 아닐까? 인간 본성 근간은 안바뀐 면모가 있어서 무지로 인한 실수는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옛날에 지옥편 하나 읽었다가 여차저차 미뤄오다가 드디어 읽었다. 그 때는 기독교에 편견과 반감이 심했고, 니체가 혹평 했던거 영향 받고 안읽은거 같다. 니체는 단테를 보고 무덤에서 시를 짓는 하이에나라고 평했다. 어찌보면 자신이 안좋아하는 사람과 개인적인 원한 관계 있는 사람은 지옥에 쳐넣고, 좋아하는 사람은 이교도임거나 자살이란 죄가 있음에도 지옥행을 면하고 좀 주관성이 묻어난다. 그렇게 죄의 심판을 자처하는 데 스스로 교만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지 진심으로 기독교에 대해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가고 무슨 의도로 썻을까 궁금하다. 일단 문체는 수려하긴 수려하고, 배경지식이 없어 내용을 잘몰라도 그리고 번역으로 봐도 매혹적이다. 분량도 얼마 안된다. 제대로 빠삭 이해할려면 배경지식이 필요하겠지만 전문연구는 할것 아니라서 가볍게 읽었다. 겉보기만 해도 표현이 장엄하고 고고한 인상이 있다. 그 장엄함과 고고한 인상이 기독교 성경에서 유래된걸까? 아니면 단테가 빠는 고대 이교도의 서사시에서 배운걸까? 그런 물음에 영감을 얻게 성경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연옥에서도 죄에 대한 처벌을 받는데, 나오는 사람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 완전 성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면 들어는 봤을 텐데 어중간한 사람들이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역할이 강조됨에도 책의 내용은 따뜻함보다는 보복과 고통이 더 분량이 많다. 예수 도래 이전에 이교도에 대해서 지옥 림보에 박아놓고 구원의 희망을 상실하는 엄중함을 보여준다. 그런 엄중함이야 말로 이 작품의 고고한 인상과 장엄함의 결정적 근거 아닐까? 천국 편에는 지옥과 연옥에 대비되는 어떤 영광과 구별되는 고고한 인상이 있는가? 내가 한번 봐서는 잘모르겠다. 그 보복과 고통은 사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것보다는 고대식 같은 야만성에 가깝다. 호메로스 서사시도 보복에서 굉장히 엄중했다. 고귀한 아킬레우스도 따지고 보면 고귀한 헥토르의 49명의 형제들의 상당수를 작중 전에 죽여놓고, 자기 애인인지 친구인지 애매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에 못참아 헥토르를 죽인다. 신분적으로 따져봐도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시종이였다. 서양권에서는 시종을 귀족으로 썼을지 모르나. 왕족은 아니므로 공평하다고 보긴 힘들다. 그리고 시체능욕 까지 하다가 자신이 죽는다는 예언이 있긴 하지만 과하다는 인상이 있다. 시체 찾으러 온 아비 프리아모스에게 시체를 돌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용서와 화해라고 하더라도 입힌 피해에 비하면 보상은 미미한 수준이며 현대적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아이네아스도 훨씬더 온화하긴 했지만 친구의 죽음에 보복하는 것으로 미완성작으로 남은 채 끝난다.


복수에서 엄중함은 마피아를 연상시키고, 마피아들도 독실한 카톨릭이기도 한 아이러니가 있다. 유사하게 불교에도 조폭들이 대규모로 귀의한 경우가 있었다. 이교도라 지옥에 다 쳐박으면, 카톨릭인 마피아들은 헌금 많이하고, 회개하면 지옥에 안갈수도 있는가? 마피아와 마찬가지로 단테가 기독교에서 이상적인 인간이였을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단테가 비록 이탈리아 북부 사람이긴 하지만 남부 문화에는 가족이나 친지 사이에서 굉장히 따뜻하게 포용하는 문화가 있기도 하다. 마피아를 소재로 훌륭한 미디어 매체가 나오는 걸 보면 엄중함과 따뜻함 양극단에서 뭔가 예술적인 영감의 원천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