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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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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즉문즉설에 꽂혀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영상을 봤다.
가슴속의 공허함으로 몸부림치던 때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필사적으로 주위를 붙들려 하는 형국이었다.
당시 내게 법륜은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알아낸 사람처럼 보였다.
일반인들이 지닌 온갖 통념과 고민 등을 그는 뒤집어 엎거나 깨부순다.
거기서 새로운 깨달음이 도출된다.
그 참신함과 강력한 임팩트 때문에 그의 설법은 즉문즉설이 아니라 즉문즉'답'처럼 느껴진다.
즉문즉설 영상이 너무 많아서 모조리 커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이런저런 책도 꽤 훑어봤다.
개인적으론 <행복>이 그의 생각을 잘 담아냈다고 본다.
인간사의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그의 설법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일단 그는 행복과 불행을 우리가 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체유심조'
온갖 방식의 인식 전환을 통해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한다.
노련한 유술가가 상대의 온갖 공격을 되치는 느낌이다.
모든 문제의 원리를 분석한 듯 바로바로 파훼법이 튀어 나온다.
과거는 지나간 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이 같은 부처님 말씀처럼 그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촉발되는 괴로움을 '손절'할 것을 처방한다.
즉문즉설을 따라가다 보면 각종 번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어느새 자유롭고 홀가분해진다. 심지어 행복해지기까지 한다.
내 스스로가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지 깨닫게 된다.
신통한 노릇이다.
중생들이 구름처럼 따라다니는 게 이해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금세 약빨이 떨어진다.
뭐라 꼬집기는 어려운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여전히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다.
과연 속세의 중생들이, 사회에서 인간들과 상호작용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그의 가르침대로 사는게 가능한 일인가?
또한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불행이 행복으로 전환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마치 모드를 변경하듯 생각과 감정을 일시에 바꿀 수 있는가?
그의 설법은 때로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보인다.
인간에겐 슬픔이나 분노 등의 감정도 분명 효용이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들에게 즉문즉설은 과도한 주문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국제정세나 최신과학 등의 영역까지 넘나들 때는 살짝 선을 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즉문즉설 영상에선 질문자를 찍어누르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도 있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여러 차례 망언에 가까워 보이는 즉문즉'답'도 인터넷에 떠돌았던 걸로 안다.
정리가 잘 안 되긴 하는데 아무튼 내게 그의 통념 뒤집기식 처방이 많은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의견에 모조리 동의할 수는 없다.
부처는 강을 건너면 배를 두고 떠나라 했다.
여전히 괴로움의 강에서 빠져나온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 길을 스스로 열어내야 할 것이다.
임제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고 했다.
나는 법륜을 죽여야 될 지 모른다.
결국 '자등명 법등명' 정신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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