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예술에서 참신하고 독창적인 기법이 주목받지, 한 세기 전에 나온 걸 재탕하는 게 주목 받음 ?
익명(223.62)2022-01-04 08:55
조이스, 프루스트를 깊이 있는 ‘척’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간결함이 좋은 글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근거는 또 무엇인지
익명(121.167)2022-01-04 09:15
답글
글을 의미전달의 도구로 정의한다면 간결함이 좋은 글이 되는 건 맞지
익명(1.229)2022-01-04 09:25
답글
지금 문학 얘기하고 있는데 문학으로서의 글을 단순히 의미전달의 도구로 정의할 수는 없잖아
익명(121.167)2022-01-04 09:55
답글
문학에서의 글도 마찬가지임. 내면을 표현하든 미사여구를 넣든, 기교를 부리든 미묘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은 같으니까. 다만 독자가 느끼기에 쓸데없이 불필요한 정보가 많다고 느껴지면 좋은 글은 아니게 되는 거지
익명(1.229)2022-01-04 10:08
답글
일리있는 말인데,
그 쓸데없고 불필요한 정보가 작가가 의도한 미학적 장치일 수도 있는데, 간결하지 않다고 좋은 글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는 건 다소 오만해 보임.
익명(223.39)2022-01-04 10:39
답글
좋고 나쁨은 애초에 주관의 영역인데 뭐가 오만하다는 거지? 작가가 미학적 장치를 놓든 폭탄을 놓든 보는 사람 입장에서 불필요하다면 좋은 글이 아니게 되는거지. 세상은 의식이 만들어내는 관념에 불과함. 가령 좋고 나쁨에 있어 너가 말하는 '절대적' 기준 같은 건 없어
익명(106.102)2022-01-04 17:55
답글
좋고 나쁨은 주관의 영역이다=동의함
좋고 나쁨에 절대적 기준은 없다=동의함
따라서 간결하지 않은 글이 누군가에겐 좋지 않은 글이다=당연한
근데 이 글에서는 간결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단언하면서 간결함을 절대적 기준에 두고 있다고. 그건 오만한 거고.
익명(211.177)2022-01-04 21:31
사실 조이스가 대단하다고 평가받는건 단순히 의식의 흐름때문은 아님, 그는 텍스트로 더블린이라는 세계를 더불어 한 인간의 내면세계까지 모든 것을 창조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의식의 흐름을 사용/전개해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거고, 프루스트는 그의 유년, 청년, 중년, 말년, 예술, 사랑, 인생에서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을 완벽히 모사하는데 의
익명(1.244)2022-01-04 10:03
답글
식의 흐름을 사용/전개해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거고, 프루스트는 그의 유년, 청년, 중년, 말년, 예술, 사랑, 인생에서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을 완벽히 모사하는데 의식의 흐름을 사용함. 의식의 흐름이라고 해서 정돈이 안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오해인데 프루스트의 경우 단순히 인간 내면 의식 속 생각인 줄만 알았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문학적 떨림,
익명(1.244)2022-01-04 10:04
답글
예술적 깊이를 고려하여 배치한 직유와 은유란 사실은 의도성이 다분함. 조이스는 의식의 흐름 속에 이미지, 시간, 패러디, 리듬, 음악, 반복을 통해 인간의 내면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창조했음을 알 수 있음. 프루스트와 조이스가 심리적으로 들어가 쓴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들은 작가임 작가는 의도적이지, 작가의 세계는 모든 것이 작가가 쓴 글에 의해 돌아감
익명(1.244)2022-01-04 10:04
답글
텍스트가 자꾸 의도에서 벗어나면 그건 존나 실패한 글이지… 물론 일부러 이렇게 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포스트 베케트 되겠지. 고도를 기다리며의 강화판인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보면 해체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베케트의 유희를 보고 있자면 어쩌면 실패를 이렇게 잘 표현한 작가가 있을까 생각이 듦. 반복해서 스타일과 표현을 말소 시켜
익명(1.244)2022-01-04 10:05
답글
버리는 환상적인 테크닉과 글의 기괴한 변형을 통해 이룬 이미지. 사라진 개성이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훌륭한 스타일이 되는 과정은 문학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음. 문학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베케트의 스승 조이스가 좋아한 셰익스피어는 최초의 부조리 희극 아테네의 타이먼을 토마스 미들스턴과 함께 합작했는데 베케트 역시 그의 유명한 부조리 희극 고도를 기
익명(1.244)2022-01-04 10:05
답글
고도를 기다리며를 내며 몇몇 사람들이 이르기를 고도는 신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내 내 내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내가 베드로다 나는 베드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말라 어떤 기분 이었나 나 나는 사실 사실 지금 누구를 기다리려다가 아침을 못 먹어서 배고파 마침 카페가 있길래 들어가 브런치 세트를 시켜 먹었는데
익명(1.244)2022-01-04 10:06
답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나와서 마르셀이란 화자의 서술을 맛있게 씹어먹고 음료수로 율리시스를 마셨는데 장치와 문체 해체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는 지금 배탈이 났다 그래도 좋아 Yes.
문알못 인정
너는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함?
어렵고 깊이 있는척 하는 글이 아니라 쉽고 깊이 있는것
그러면 그냥 그 사람들이랑 가치관이 달라서 그리 생각되는 것 같다
일부러 교란시키는 글도 내 나름 해석하는 재미는 있던데
그럼 예술에서 참신하고 독창적인 기법이 주목받지, 한 세기 전에 나온 걸 재탕하는 게 주목 받음 ?
조이스, 프루스트를 깊이 있는 ‘척’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간결함이 좋은 글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근거는 또 무엇인지
글을 의미전달의 도구로 정의한다면 간결함이 좋은 글이 되는 건 맞지
지금 문학 얘기하고 있는데 문학으로서의 글을 단순히 의미전달의 도구로 정의할 수는 없잖아
문학에서의 글도 마찬가지임. 내면을 표현하든 미사여구를 넣든, 기교를 부리든 미묘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은 같으니까. 다만 독자가 느끼기에 쓸데없이 불필요한 정보가 많다고 느껴지면 좋은 글은 아니게 되는 거지
일리있는 말인데, 그 쓸데없고 불필요한 정보가 작가가 의도한 미학적 장치일 수도 있는데, 간결하지 않다고 좋은 글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는 건 다소 오만해 보임.
좋고 나쁨은 애초에 주관의 영역인데 뭐가 오만하다는 거지? 작가가 미학적 장치를 놓든 폭탄을 놓든 보는 사람 입장에서 불필요하다면 좋은 글이 아니게 되는거지. 세상은 의식이 만들어내는 관념에 불과함. 가령 좋고 나쁨에 있어 너가 말하는 '절대적' 기준 같은 건 없어
좋고 나쁨은 주관의 영역이다=동의함 좋고 나쁨에 절대적 기준은 없다=동의함 따라서 간결하지 않은 글이 누군가에겐 좋지 않은 글이다=당연한 근데 이 글에서는 간결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단언하면서 간결함을 절대적 기준에 두고 있다고. 그건 오만한 거고.
사실 조이스가 대단하다고 평가받는건 단순히 의식의 흐름때문은 아님, 그는 텍스트로 더블린이라는 세계를 더불어 한 인간의 내면세계까지 모든 것을 창조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의식의 흐름을 사용/전개해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거고, 프루스트는 그의 유년, 청년, 중년, 말년, 예술, 사랑, 인생에서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을 완벽히 모사하는데 의
식의 흐름을 사용/전개해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거고, 프루스트는 그의 유년, 청년, 중년, 말년, 예술, 사랑, 인생에서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을 완벽히 모사하는데 의식의 흐름을 사용함. 의식의 흐름이라고 해서 정돈이 안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오해인데 프루스트의 경우 단순히 인간 내면 의식 속 생각인 줄만 알았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문학적 떨림,
예술적 깊이를 고려하여 배치한 직유와 은유란 사실은 의도성이 다분함. 조이스는 의식의 흐름 속에 이미지, 시간, 패러디, 리듬, 음악, 반복을 통해 인간의 내면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창조했음을 알 수 있음. 프루스트와 조이스가 심리적으로 들어가 쓴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들은 작가임 작가는 의도적이지, 작가의 세계는 모든 것이 작가가 쓴 글에 의해 돌아감
텍스트가 자꾸 의도에서 벗어나면 그건 존나 실패한 글이지… 물론 일부러 이렇게 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포스트 베케트 되겠지. 고도를 기다리며의 강화판인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보면 해체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베케트의 유희를 보고 있자면 어쩌면 실패를 이렇게 잘 표현한 작가가 있을까 생각이 듦. 반복해서 스타일과 표현을 말소 시켜
버리는 환상적인 테크닉과 글의 기괴한 변형을 통해 이룬 이미지. 사라진 개성이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훌륭한 스타일이 되는 과정은 문학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음. 문학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베케트의 스승 조이스가 좋아한 셰익스피어는 최초의 부조리 희극 아테네의 타이먼을 토마스 미들스턴과 함께 합작했는데 베케트 역시 그의 유명한 부조리 희극 고도를 기
고도를 기다리며를 내며 몇몇 사람들이 이르기를 고도는 신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내 내 내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내가 베드로다 나는 베드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말라 어떤 기분 이었나 나 나는 사실 사실 지금 누구를 기다리려다가 아침을 못 먹어서 배고파 마침 카페가 있길래 들어가 브런치 세트를 시켜 먹었는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나와서 마르셀이란 화자의 서술을 맛있게 씹어먹고 음료수로 율리시스를 마셨는데 장치와 문체 해체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는 지금 배탈이 났다 그래도 좋아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