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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3번 이상은 재독인가 그래서 내용은 놓치는 부분 거의 없이 자신있게 파악한다고 할 수 있다. 소소한 단역에 가까운 늙은 하인 애덤이 몇줄 안되는 대사로 캐릭터성 부각된다고 셰익스피어 재능 찬양한 블룸의 말이 기억 나는데 그 장면 임팩트 있긴 한데 클리셰가 많아서 그런지 처음 읽을 때는 그런 부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그보다는 제익퀴즈가 셰익스피어극 내에서는 독특한 인물인데 울적하고 냉소적인 인물로 묘사 된다. 희극에서 우울한 인물로 유사하게 베니스의 상인 주인공이 있는데, 전자는 부와 명예도 마다하고, 끝에도 남들 잔치를 하는데 혼자 일행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흥미를 위해 참회한 공작 동생을 찾아간다. 알고자 하는 충동은 뭔가 학구파적 인상을 준다. 태초의 학문의 발전도 세상 풍파에 장애를 겪으니까 발전한다. 기근이든 전염병이든 그런 것들이 지혜를 성숙시킨다. 거기서 나름 만족감 찾고 순응하는 태도는 동아시아 자연합일이니 조화라니 그런 정신과 같이 진보를 지체 시킨다. 서구식 자연정복적인 태도가 진보된 이유가 다 있다. 유럽인 그 중에서 찌뿌둥하고 뚱한 태도로 날씨도 흐리고 맥주나 홀짝이던 게르만 계열에서 문화가 발전한 이유가 다 있다.


처음에는 남녀 주인공 일행이 각각 형에게, 삼촌에게 겁박을 당하면서 숲으로 도피를 하는데, 후반부 사랑이 맺어지면서 신혼 전과 같은 산뜻함과 달콤함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셰익스피어 로맨스극 중에서 제일 달콤했다. 동병상련이니 어려울 때 같이 있어준 사람은 못잊는다니 서로 통하는바가 있는 것인가. 피가로의 결혼과 공통점이 계속 보였다. 남장여자, 용서와화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제 삼의 인물의 훼방과 삼각관계 형성, 여주의 깜짝 등장으로 전부 어리둥절하는 장면, 가족 재회와 통합, 신혼전의 달콤한 분위기. 피가로의 결혼에서 인물이 불어나면서 4명이서 아리아 부르고 6명이서 아리아 부르던데 뜻대로 하세요에서도 가족이 재회하고 통합하면서 장면에서 대여섯명이 모이게 된다.


가족간에 용서와 화해, 배신 당한 형은 템페스트에서도 유사하게 진행되는데, 최종 악역에 해당하는 동생은 어떻게 회개하게 됐는지 묘사가 나오지 않는다. 올랜도의 형인 올리버는 위기순간 도움을 얻으면서 참회를 하지만 공작 동생은 장로를 만나면서 종교적인 회개를 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느낌이다. 리어왕에서 서자 에드먼드도 죽기 직전에 기독교적 교리에 힘입어서 참회를 하는데, 셰익스피어 극에서 악역의 입체성이 좀 부족한거 같다. 악역은 샤일록이나 이아고 같은 원래 심술궂은 악역으로 나올 뿐이지. 어떻게 해서 악역이 되고, 특히나 악역에서 선역으로 되는 것은 전개가 빈약한 것 같다. 종교적인 관례에 힘 입는 면모가 강하다. 악역에 대한 편향적인 색채를 입히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그가 인간을 투명하게 관찰하는 것은 그런 주관적인 색채가 없기 때문인가?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을 보면 절대 악에 가까운 악당들과 대립을 겪고 거기에 전개가 의존한다. 선역에 조력자들도 나오고, 선역이 흑화 하는 과정이나 변화하는 바 거기에 한정하여 입체성을 보여준다. 집중이 악역에 대한 증오에만 가있고, 상대적으로 이입하는 주인공 외에 선역에 대해서 무관심하니 투명한 관찰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셰익스피어 극 주인공이 연인 외에 열렬히 사모 한다든가 그런적이 있었는가? 예의만 지킬 뿐 무례하게 굴지 않는 한도 내에서였다. 주인공은 이미 고귀한 지위인지라 충성은 조력자들에게 맡겨두고, 오히려 가부장제나 폭정에 항거하는 게 주연의 고귀함이였다. 여주도 그럴 때 입체성과 캐릭터성이 빛난다. 자기와 악당 외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원어로 보니까 영단어 제일 풍부하게 만드는 게 광대들이란 걸 알아냇다. 그녀석들 나오면 전부 말장난이고, 생소한 어휘들이 많이 나왔다. 난이도 높히는 역이 광대들인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