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차 번역가 정영목 교수
번역을 두고 제기되는 ‘직역이냐 의역이냐’ 같은 문제는 그에게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에서 반복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번역다운 번역은 번역 같지 않은 번역'이라는 모순적 인식이 지배하는 현 상황이다. 그는 번역을 판단하는 기준이 이런 식으로 획일화되면 ‘번역 냄새가 나지 않는, 매끄럽게 잘 읽히는 가독성 높은 글'로 번역이 규격화되고 보수화될 것이라 걱정한다.
그렇다면 번역가가 추구해야 하는 번역은 뭘까. 그는 번역이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서 제3의 언어, 회색의 언어를 생성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번역의 중요한 역할이란 곧, 번역된 작가가 한국의 독자들이 읽는 문학에 전에 없던 새로운 목소리를 보태도록 하는 것이라 말한다. “외국어 번역의 충격으로 등장한 제3의 언어, 회색의 언어가 기존 한국어의 변경에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어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번역이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여라는 것이다. “어색하고 낯설고 생경한 면을 통해 우리의 현실 속에 어떤 것이 없음을 알려주고, 또 바깥에서 온 언어가 우리의 현실과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번역의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가 여기서 사례로 드는 것이 ‘자유 간접 화법’이다. “철수는 영희가 좋다고 말했다”는 간접 화법, 독백으로 말하는 “나는 영희가 좋다”는 자유 직접 화법이라면, “철수는 영희가 좋다”가 바로 자유 간접 화법이다. 이 화법은 19세기 프랑스 소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문체로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말이 서술자의 말과 겹치기에 서술자의 주관이 개입할 수 있어 현대 소설에서 즐겨 사용됐다. “이런 충돌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번역으로 자국어의 영역을 확대하는 작업, 다른 언어와 우리 언어의 혼종에 의해 제3의 언어, 순수하고 절대적인 언어를 지향하는 작업은 언어의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1만2500원,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1만4000원
‘번역 투’는 여전히 게으른 것 혹은 실력 없는 것으로 푸대접받는다. 정 교수는 번역 투를 걷어 낸 매끄러운 번역에 반대한다. ‘투명한 번역가’가 되는 걸 거부한다. “외국어를 번역한 한국어는 한국어가 아니다. 제3의 회색 언어다. 그걸 인정해야 한국어가 넓어진다. 술술 잘 읽히는 것만 따지는 건, 소화 잘 되는 이유식만 먹고 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에는 박수를 치면서, 왜 그걸 부지런히 살려서 번역한 글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나. 물론 미숙해서 자연스럽지 않은 번역과 부자연스러움을 의도한 번역은 다르다.”
피동형 문장을 비롯한 영어식 표현은 글쓰기의 금기다. 번역가에게 죄를 묻곤 한다. 외국어를 닮은 문장은 유죄인가. “기계적으로 가를 순 없다. 피동형으로 써야만 하는 문장이 있다. 문장의 무게와 온도에 따라 판단한다. ‘비가 오늘 아침에 내가 학교 가는 걸 막았다.’ 직역 투의 문장이다. 그렇게 쓰지 말라고 한다. ‘비 때문에 못 갔다’고 바꾸는 게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독특한 느낌을 살려야 할 때가 있다. 번역가는 스스로 납득되는 말로 번역한다.”
오랜 세월 번역을 업으로 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좋은 번역이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한다. 다만, 발터 벤야민 이론을 토대로 "번역가의 과제는 완전한 '번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라고 쓴 내용을 이렇게 부연했다.
"보통 A라는 언어, 고정된 실체를 B라는 언어로 옮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역이냐, 의역이냐', '원작에 충실할 것이냐,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 데 충실할 것이냐' 논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얘기는 A라는 언어가 있을 때 이것을 완결된 실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는 고정된 상태로 텍스트 안에 담겨있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인지·인식과 상호작용하면서 해석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는 거니까요. 결국 번역은 고정된 덩어리를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두 언어 안에서 미완된 부분, 제3의 어떤 부분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번역하는 작품 내용에 관해 작가와 직접 의견을 나눈 적은 없을까.
"어떤 분에게 이메일을 보낸 적이 한 번 있는데,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답이 왔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맞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다음부턴 그냥 제가 다 알아서 하게 됐습니다.(웃음)"

기사 출처가 어디임? 원기사도 보고싶다
시공사 그리폰북스 1기로 나왔던 <높은 성의 사나이> 한국어 초역본이 위 게시글에 소개된 분이 번역한 것이었죠. 하도 엉망이어서 그리폰북스 기획을 맡았던 K모씨가 "내가 무료로 다시 재번역해주겠다 - 이런 번역 원고는 출간 못한다"라고 버티다가 출판사측의 입장과 어긋나는 바람에 갈라서게 되었고, 그 번역원고가 그냥 출간되었습니다 - 독자들을 경악시킨 전설의 번역망작으로 꼽힙니다. 이후 K모씨는 시공사와 갈라서고 행복한책읽기 SF시리즈와 폴라북스(현대문학) SF 시리즈를 기획하는 것으로 길을 바꾸었습니다. 결국 폴라북스가 PKD선집을 내면서 <높은 성의 사나이>는 재번역되어 나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