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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에 장문 써봐야 읽는 사람 없겠지만 블로그에 올린거 복붙해서 올려봄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어머님께 선물로 드렸던, 이제는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잠자고 있는 박준의 시집을 꺼내 읽는다.
다시 읽어봐도 감각적이고 쉽고 젊다. 시를 하나씩 따로 읽어도 이해가 된다.
미래파 시인들의 소위 '난해함'이 없다. 많이 팔린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 하다.
물론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만 대중들은 그렇지 않다. 김민정의 시가 짤로 만들어져 조리돌림을 당하더라.
어쩌면 이렇게 감각적이면서도 비어있지는 않은 시들이 확장성이 참 넓고, 그래서 오래 살아남을지도..
표제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인의 이별 이야기다.
1연. 시의 화자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 시인이다. 시인은 연애를 했고 이제 그만두었다. 연애란 타인의 삶이 나의 삶에 깊이 관여하며 많은 것을 바꿔놓는 과정이다. 지출에서부터 그렇다. 혼자 살 때와는 달리 먹고 데이트하고 자는 모든 일에 나의 지갑은 쪼그라들고, 그녀와의 자질구레한 감정다툼은 나의 일에 지장을 준다. 따라서 이제 사랑이라는 '이상한 뜻'이 없는 화자에게 생계는 다시 간결한 것이 된다. 새롭게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여성들과는 데면데면해서 날씨 얘기만 겨우 나눌 뿐이다. 화자는 애써 담담해한다.
2연. 시인와 시적 화자는 물론 다르다. 그러면서도 또 같다. 시란 시적 화자=시인의 가장 내밀한 감정들을 가장 개인적인 언어로 담아낸다. 그러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잘못 쓴 서정시는 한탄에 불과하며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은 시적 화자라는 가상의 존재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으면서도 그의 객관적이면서도 내밀한 '자서전'을 서술할 수 있다. 그게 시다. 이는 그의 업이므로 기계적으로 써내려갈 수 있다. 나는 직업시인이고 감정에서 시를 분리해내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담담한 척 하지만 실연에 가슴아파 무너지는 연약한 개인에 불과하다. 이 감정들은 '익숙한 문장들'과 함께 내 손목을 잡고 나의 진짜 감정을 적을 수 있는 '내 일기'로 데려간다. 어쩔 수 없다.
3연. 그(시적 화자)의 자서전=시에 화자는 정제된 언어로 적는다. 이별이라는 찬비는 물이끼와 같은 먹먹한 슬픔을 자라게 하고, 그녀라는 잠깐 빌려 입은 외투와의 관계는 나의 가장 은밀한 속옷에까지 색이 물들 정도로 깊었다고. 하지만 시인으로서 슬픔을 승화시킨 '잘 쓴 은유'로는 아직 승화되지 않은 개인적 슬픔을 달래기에 부족하다. 이제 나는 유치하지만 일기장에 적는다. 나는 아프다. 당신을 다시 볼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당신의 이름=기억이 남아 있다. 약을 짓듯 나는 그것을 받아와, 다 먹어버릴까봐 아까와 며칠 동안이나 조금씩 아껴서 곱씹는다. 내가 진짜 하고 싶고 전하고 싶었던 말은 유치하지만 이렇다.
4연. 나와 그녀의 이별은 비극적이고 나의 솔직한 전언은 그녀와 만나지 못한다. 또 개인으로서의 자아와 시적 자아 역시 분리되어 하나는 시집에, 하나는 일기장에 적힐 뿐이다. 이렇게 이중적 '우리'의 만남 또는 재화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후적으로 바로 이 시 속에서 다시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고 시적 화자와 시인이 동일한 서정시가 완성된다. 말=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도,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하기'에. 나는 이 시 속에서 아름답게 상처를 봉합하고 그녀를 잊을 수 있다. 이 시인이 실연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개추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