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 18세기, [호세아 예언자], 이콘, 러시아 카렐리야 키지 수도원 소장
미켈란젤로, 1508-1512년, [요엘 예언자],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
오늘의 독회 본문 : 호세아서, 요엘서
오늘 다룰 책들의 예언자들은 인지도가 조금 미묘하죠? 호세아서도 요엘서도 내용이 아주 짧기도 하구요.
그래서 관련 있는 예술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저 두 그림 말고는 안 나오더라구요 ㅋㅋ
지나친 비방이나 분란을 일으키는 댓글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 독회 일정 : 1월 16일 19시
다음 주 독회 본문 :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 오바댜서
※ 독서 갤러리 성경 독회 링크모음 ※
독회랑 관련 없지만 물어볼 거 있어요! 하박국이 외경인가요? 읽을만 한가요? 혹시 욥기와 관련이 있나요?
하박국은 제2경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욥기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와 이거 아직도 하고 있었네 꾸준추
별 일 없으면 신약까지 쭉 갈듯 많관부
1. 호세아서는 짧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내용이 들어있죠. 1장부터 3장까지의 가정사가 그것입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아마도 신전 창녀였을 고메르와 결혼해 이상한 이름의 자식들을 낳은 이야기는 워낙 파격적이다 보니 처음에는 교훈을 주기 위한 픽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독회에서 말했듯이 하느님-백성 사이를 혼인으로 표현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아가서라던가 예루살렘을 부정한 아내로 묘사한 에제키엘서라던가...)
1.1 그런데 주석을 찾아 보니 호세아의 결혼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더군요. 주된 논거는 이렇습니다 1. 세 아이들이 이상한 이름(대충 이스라엘 백성을 비판하는)을 가진 것에 반해 아내 고메르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이름임. 허구라면 상징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 2. 이 이야기가 허구였다면 그 중심이 고메르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3. 결혼 이야기는 예언자의 메세지에 비하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임 라고 합니다
1.2 아무튼 중요한건 이상한 결혼과 이상한 이름이 아니라 그것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불쌍히 여김받지 못하는 여자라는 뜻의 로 루하마에서 부정을 뜻하는 로를 빼버리고,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의 로 암미에서 로를 빼고, 다른 남자와 사랑한 아내와 다시 재결합 한 내용은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간의 관계 회복과, 하느님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사랑을 상징한게 아닐까 합니다.
2. 하느님-백성 관계 말고도 저자가 강조하는 주제가 있는데, 바알 신앙에 대한 것입니다. 호세아는 바알 신앙에 매우 적대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장을 참고하면 바알이라는 단어 자체를(바알은 바알 신 뿐만 아니라, 부인이 남편을 부르는 호칭과 주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극도로 혐오하죠. 이 외에도 바알 상을 송아지라고 낮잡아 부르기도 하죠.
3. 그리고 에프라임이라고도 하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도 빠지지 않습니다. 거의 매 장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지도자를 비판하면서 속히 회개하라는 내용이 들어있죠.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아마 예로보암 2세의 사후에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정권 찬탈과 깊게 연관이 있는듯 합니다. 1장 1절에서는 예로보암 2세 이후의 왕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고, 8장 4절에서는 하느님의 말을 빌어 '그들이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라면서 칼로 왕좌에 오른 왕들을 비판하죠.
이사야의 율법해석과 그에 영향을 받은 (이사야는 요시아 생전에 처형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시아왕의 개혁 이후 유대교의 배타성이 상당히 강조됩니다. 유일신앙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한 편으론 그렇게 개혁을 단행했는데도 바알신앙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이 계속되는걸 보면 끝내 바알신앙으로 대표되는 지역신앙을 버리진 못했던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고신화학적으로 풀이한 견해가 있는데
유대인이 유목민출신의 이민집단이 맞다면 팔레스타인 지방에 영향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농경기술을 새로 익혀야 했고, 자연스래 농경의 신이었던 바알신앙과 연관될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통치집단/제사직 집단에서 보면 혀를 찰 일이지만 지역 농민들에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는거죠. 당장 당시의 달력이나 농경축제등도 민속신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생
각해 보면 영향을 받지 않는것이 이상할 지경입니다. 어찌되었건 당시의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의 최대과업은 유대교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었고 구약의 내용 대부분에서 그 애처로운 발버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예언서만 해도 이민족 신앙 받아들이지 마라 우상숭배 하지 마라....는 내용 안 담긴 책이 없었죠 아마? ㅋㅋㅋㅋ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파스카 축제만 해도 원래는 이민족들이 보리 수확시기에 벌였던 농경 축제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집트 탈출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고 하더군요
소예언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호세아서 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강력한 퍼포먼스로 신의 뜻을 전달코자 하는 사례가 많은데, 호세아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자그마치 본인의 인생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에 경고의 소식을 전하죠. 에스겔의 경우도 그렇고 참 예언자라는게 할만한 일이 아닌것 같아요
요엘서는 길이는 짧지만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책입니다. 묵시적인 분위기와 강력한 경고의 예언은 저 뒤의 계시록을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 그 유명한 '황충'과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등장하기도 하죠.
3장의 '보습을 쳐서 칼을, 낫을 쳐서 창을 만들라!'는 구절은 그 유명한 이사야 2장4절의 칼을 쳐서 낫을 만들라는 구절의 안티테제인 것이 흥미롭습니다
요엘서는 작은 계시록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요한의 계시록과 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요한의 계시록이 훨씬 후대에 기록됐음을 생각하면 아마 계시록의 저자가 요엘서를 참고했다고 보는게 자연스럽겠죠. 이스라엘왕국의 멸망을 노래한 요엘서와 로마제국에 의한 멸망을 노래한(정황상) 계시록이 수백년의 차이를 건너뛰어 연결되어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신기하네요.
확실히 묵시록이 생각나는 내용이죠. 저술 시기를 특정할만한 내용이 몇개 없어 언제 써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성전 파괴 전후로 가정한다고 치면 묵시 문학이 크게 인기를 얻게 된 기원전 2세기경보다 훨씬 앞서서 진노의 날을 얘기한게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