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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역사학자들은 실증위주던 포스트모더니즘 이던 전문가들이니 출처검증은 신뢰성 있을 거라 생각했음. 그런데 그런 신뢰성에 금이 가게 한 책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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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혜심,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마녀사냥에서 트위터까지』, 서울 : 길, 2012


이 책은 미시사와 포스트 모더니즘 성향의 책임.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역사학의 신뢰성에 금이 갔음. 그건 트위터 관련된 내용이었어. 난 처음엔 트위터 쓰는 이용자들의 문화같은 걸 분석하는 건 줄 알았는데 실제 내용은 내 예상과 달랐음. 그게 무엇인지 현재는 기억이 나지 않았고, 논문 통과한 책도 아니니 그냥 넘어갈까했음. 그런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봤는데 내가 몰랐던 다른 사실을 알게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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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봤던 트위터 내용은 이미 저자가 논문으로 게재해서 KCI에 등재된 논문이었음.


혹시 내 기억이 잘못된건가 해서 논문을 읽어봤는데, 이 논문에선 트위터의 신뢰성을 다음과 같이 결론내림.



개인의 트위터는 현재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근대 초의 사료에서 ‘그 자리에 두 명의 마을 사람이 있었다’와 같은 모호한 표현을 만났다면 역사가는 그 두 사람이 누군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실마리를 쫓았어야 했다. 하지만 트위터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곧 바로 정확하게 알게 해 준다. 대부분의 트위터 사용자들은 실명을 사용하며 자신의 사진을 내걸고 있을 뿐만 아니라 GPS적 정보(geotag)로 인해 그 당시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트위터 데이터센터에 축적된 어마어마한 자료는 과거 미시사 연구가 겪어온 ‘예외성’ 논쟁을 상당 부분 가라앉게 할 것으로 보인다.…이제 트위터의 어마어마한 자료의 풀은 ‘이례적 사안’으로 보이는 것일지라도 다른 예들을 쉽게 찾아내게 할 수 있을 것이고, 한 발 더 ‘정상성’에 근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트위터 데이터가 사료로서 지닌 장점을 조금 더 논의해 보자면 우선, 왜곡된 사료를 만날 가능성이 매우 줄어들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데이터센터에 축적된 트위트의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상호비교를 통해 진위를 걸러내기가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위터 데이터는 즉시성으로 인해 그 자체가 오류를 적게 지닌다는 특성도 있다. 왜냐하면 트위터 자체가 실시간 필터링 시스템이 가동하는, 일종의 자정작용이 가능한 생태계와도 같기 때문이다. 즉,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갈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오류를 바로잡는 일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곤 하는 것이다. 제프 자비스(Jeff Javis) 교수는 “이미 증명됐지만 웹에는 루머가 퍼지는 것처럼, 진실도 그만큼 빨리 퍼져나간다”고 말한 바 있다


설혜심, 2010, 「트위터와 미시사」, 한국사학사학보, 21, 184-185


저자는 제프 자비스 교수를 언급했지만 정작 각주에 나온 문헌은 제프 자비스 교수의 논문이 아님. 심지어 각주로 제시한 출처는 논문이나 연구서, 전공서가 아님. 『트위터, 140자의 매직』(이성규, 2009, 『트위터, 140자의 매직』, 책보세)이라는 얇은 교양서임.


KCI 등재된 역사학 논문피셜:

트위터 사용자들은 대부분을 실명을 사용하며 자신의 사진을 내걸고 GPS로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사실관계를 알려준다.

트위터 데이터는 예외성에서 벗어난다.

트위터 데이터를 사료로 삼으면 왜곡된 사료를 만날 가능성이 매우 줄어든다.

트위터 데이터의 특성은 오류를 적게 지난다는 것이다.

트위터 자체는 실시간 필터링 시스템이 가동하며 일종의 자정작용이 가능한 생태계와도 같다.

(해당분야의 저널에 게재되는) 언론학/미디어학/커뮤니케이션학 같은 사회과학 논문이나 전공서는 인용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이거보고 역사학에 대한 신뢰성에 금이 갔다.


물론 저자나 학회가 비정상정이라면 경우라면 성급한 일반화겠지, 하지만 검색해보면 저자나 학회가 학계에서 비정상인 사례가 아님. 정상적인 저자의 논문에서 저런 주장 나오고 정상적인 학회에서 통과하니, 역사학의 신뢰성에 금이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