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쓸모 있음에 대한 논변은 필연적으로 철학의 생산물에 대한 가치 환산을 수반한다.
철학은 어떤 것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이득을 보고 있는지에 대한 실감이야말로 논변의 가장 핵심이 될 것이다.
우선 일상적인 감각에서 철학을 학문의 일종으로서 동시에 학문을 철학의 일종으로서 정의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이것을 일상적인 감각에서 진행해야 하는 이유는 그러지 않는 경우 그에 수반되는 역사적, 철학적, 수학적 논변들을 모두 검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고유한 동시에 보편의 방법론(사유와 비판)을 구사하여 세계를 탐구하는 인간 지각의 유한한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동시에 철학은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무한한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전제 역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1) 철학은 학문의 일종이므로 우리가 이해하는 범주 내에서 우리에게 유용함을 제공한다.
2) 학문은 철학의 일종이므로 우리에게 제공하는 유용함의 범주 내에서 우리는 이해한다.
쉬운 비유를 들자면 우리는 망치를 들고 있는 셈인데, 이 망치는 AI가 내장된 망치라서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들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유용함'이다.
학문을 도구로 보기에 합의한 우리는 유용함에 대한 생각을 방금 전 망치의 비유를 이용하여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망치는 못을 판자에 박는 데에 필요하다. 좀 더 말하자면 이것은 많은 힘을 작은 범위 내에 가해야 하는 행동에 필요하다.
목수는 손아귀의 힘을 이용하여 못을 판자에 박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힘들기 때문에 망치를 이용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망치가 유용한 이유는 '덜 힘들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철학의 특성에 대입해보자.
철학은 철학하는 주체가 놓인 시공간에 대한 분석을 제공한다.
경영학으로 치면 철학은 회계에 해당하는 정도의 중요도를 가진다.
흔히 경영학에서 회계는 '언어'라고 불리는데, 그것이 제공하는 시장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없이는 어떤 경영 활동(=문명 활동)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분석들을
A. 시간에 대한 분석
B. 공간에 대한 분석
으로 구분하자.
A에 대한 레퍼런스로서 나는 지금 읽고 있던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를 제공하고 싶다.
이것은 <시간과 타자>가 끊임없는 변화에 대해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B에 대한 레퍼런스로서 집에 있는 책들 중에서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제공하고 싶다.
이것은 <논리철학논고>가 불변하는 고정값에 대해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분석이 유효한 이유로는 몇 개의 것들을 제시할 수 있는데, 이들의 나열을 생략하고 공통점을 제시하자면 그것들이 '실감이 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레비나스가 <시간과 타자>의 제 1강에서 시간을 "타자와의 관계"로 정의하는 것을 혼자 있을 때와 타인과 있을 때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을 동원하여 공감하거나 반박할 수 있다.
또, 예를 들어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의 4.4661에서 동어 반복과 모순에 나타나는 논리적 형식들을 "무의미하고 비본질적"이라고 말한 것을 동갑내기 친구의 허풍을 떠올리며 동의하거나 부정할 수 있다.
더없이 다행인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철학자가 레비나스와 비트겐슈타인 둘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철학이라는 망치는 스스로 발전하는 AI가 내장됐기 때문에 환경(=독자)에 맞게 제 모습을 잘 바꿀 것이다.
혹자는 철학같은 복잡한 사유 과정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더 힘든 삶을 살게 하는 짐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망치를 세게 내려치는 데에 힘이 든다는 이유로 망치를 비난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것에 들이는 품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쁨의 양으로써 유용함을 판단해야 한다.
두 레퍼런스들의 실재로부터 나는 철학의 유용함을 도출하고 싶다.
그러니까 학문의 일종으로서 철학은, 그리고 철학의 일종으로서 학문은 시공간에 대한 분석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에게 유용함을 선사한다.
이러한 망치(=철학)의 유용성이 유독 다른 도구들의 그것보다 와닿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것이 삶의 모호함과 직결된 답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사실, 귀찮아서 더 쓰고 싶지 않다.)
세줄 요약)
1. 철학은 유용하다.
2. 왜냐하면 철학은 시공간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3. 철학이 유용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삶이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철학뽕에 취해서 멋대로 지껄였으므로 반박시 대부분 니 말이 맞음
나는 1)내가 이 세계의 본질을 알고 싶고 1)-1 알 수 없다면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알고 싶고 3) 내가 삶의 문제를 대하는 일관적이고 보편적이며 종합적인 원칙을 철학이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철학을 (야매지만) 공부함
논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