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김현은 진지한 얼굴로 상의해 왔다.

“어떻게 방안을 세워 <창작과 비평>에 맞설만한 좋은 계간지를 만들어보지 않겠는가?”

- 김병익, <계간지 문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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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김현은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등과 함께 <문학과지성>을 창간한다.

다음의 창간사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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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조심스러운 표현을 쓰긴 하지만, 사실 굉장히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는 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샤머니즘’은 김동리를 위시한 순수문학을 뜻하며, ‘심리적 패배주의’는 백낙청을 비롯한 참여문학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학과지성>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양쪽을 동시에 까는 데서 출발한다.

그동안의 병폐를 극복하고 새로운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내세우기! 이게 바로 김현의 야심찬 포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거창한 포부를 가능케 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하버드 박사 출신의 백낙청마저 당황케 한 것은 다름 아닌 김현의 좆목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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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표에서도 알 수 있듯, 서울대 60학번은 사기적인 라인업을 자랑하는데, 그 한가운데에 김현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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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

애당초 <문학과지성>을 창간한 것은 김현 혼자가 아닌, 단단한 인간적 결속으로 맺어진 4명의 김씨들, 소위 4k로 불리는 평론가 그룹이었다. 백낙청이라는 한 문제적 개인에서 시작한 <창작과 비평>과는 그 전개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백낙청이 세계문학의 전문가였다면 김현은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현장 문학에 능했다는 것. 그렇기에 세계문학을 표방하려는 창비와는 달리, 문지는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외치기 시작했다.

김승옥, 이청준, 박태순, 박상륭, 이문구 등 김현은 자신의 인맥을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한국문학의 청사진을 그려버린 셈이다.


물론 창비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백낙청에게 ‘창작의 빈곤’ 문제는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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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에 발견한 작품이 방영웅의 <분례기>다. 요즘 독자들에겐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당시엔 대히트한 화제의 작품이었다.

시골에서 이리저리 몸을 굴리는 ‘똥례’라는 여인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가난한 농촌의 실상을 리얼하고 객관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외에도, 염무웅 평론가를 섭외하고 좌담회를 여는 등, 동인적 성격을 발달시키기 시작했고,

이후 황석영, 송기원, 현기영 등이 등장하며 ‘창작’과 ‘비평’의 균형이 간신히 들어맞게 된다.

<창비>의 맞수로 등장한 <문지>, 야심차게 반경을 넓혀가는 김현과 약점을 보완해 가는 백낙청의 치열한 승부가 펼쳐질 예정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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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헷


1980년, 두 잡지 모두 사이좋게 폐간되며 창비vs문지, 백낙청vs김현의 전반전은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 다음에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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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목요일쯤? 올라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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