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 문학동네- 박형규
고리타분하고 전형적이고 그만큼 유명한 첫문장을 대면서 시작하지 않겠다.
결국 톨스토이는 삶의 의문점을 묻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죽음에 대해 두려워 하지 않으려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썼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 작품이 그렇듯이 그리고 지금의 현대의 과학이
주는 물음표처럼 안나 카레리나 라는 작품도 결국엔 사람이 존재하는 의문에 대해
답이 모르는 학생이 답을 이해한 것처럼 쓴 글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내가 이 작가를 비난할 의도라든가 그럴 수준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애초에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언젠가는 의문을 가지고
답을 찾으려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알 수 없으며 죽음조차 답을 주리라 확신하지 못하는 우리에겐
안나처럼 몸부림치고 삶과 자신의 분열감을 달래지 못한 채
포기하면서 멈춰서거나
무시하면서 납득해야만 할 뿐이다.
흔히 안나 카레니나는작품을 소개할 때 나오는 말들중 하나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이며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 소설
이라고 말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책을 '지금까지의 러시아문학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예술적 묘사의 리얼리즘'
이라 칭한다.
견문이 좁아 이게 뭔 소린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혹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고 그 세상에 사는 나로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고전은 고전으로써 가치를 가지지만
그런걸 뚝 때어내고 현대의 인류 보편적인 인간이 지금 이 책을 보면
안나라는 여자는 자기밖에 모르는 선택적 페미니즘의 근간이자 페미니즘의 카인이다.
레빈은 나이값 못하는 러시아 대표적 찐따같았으며
안나의 전 남편 알렉산드르는 고위층 어딘가에 있을 꼰대이자 후반부에선 케릭터가 마치 영화 미스트의 기독교 아줌마를 연상시킨다.
그나마 공감하고 불쌍하게 여긴 인물은 안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브론스키일 뿐이다.
언뜻 보면 천하의 개새키 같지만 안나에 대해 열정도 사랑도 없는 꼰대새키 밑에서 사랑도 모른 채 살아가는 안나를 구원해 준 구원자이고
자신의 출세가 막힘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위해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순애보적 마음씨를 지녔으며
나중에 안나가 거의 정신분열증에 걸려서 있지도 않은 여자를 가져다 붙여서 질투하고 비난하는 그녀를 부처와 같은 인내심과 사랑으로 포용하는 성인이다.
안나는 브론스키 면전에 대고 폐드립까지 날렸으나
손끝하나 건들이지 않은 브론스키를 보며
그를 위해 진심을 다해 맘으로 울부짖었다.
이렇듯 많은 것을 때어내고 보면 현대에 와서는 공감이 많이 가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무작정 고전에 덤비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로
고전문학을 안나로 시작하기엔 많은 무리가 있을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보충하고 싶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적절하다는 것
러시아 역사에 깊이가 있지 않아서 이해한건 반절도 안되지만
불행한 가정과 행복한 가정의 구도 속에서
그 흐름이 거칠어지거나 잔잔함을 반복하는 '세상'에
전부를 아는 것처럼 대하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비뚤어지는 사람과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했고 결국엔 사랑에 충실함으로 조금은 세상을 알게된 사람
을 보여주며 나름의 답을 구하려한다.
솔직히 종교를 싫어하는 나는 '하느님 운운'하는게 정말 보기 싫었지만
종교를 떠나서
우리가 평소에 타인에게 대하는 행동, 말, 마음가짐 등이 선을 이루고
그 선은 또한 업(카르마)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추구하는 행복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삶의 의미라는 것이 몇 가지 있다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의 의미가 진짜로 있다면
여러가지 답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끝]
P.s= 안나 개캑기
감상문은 무조건 추천이야 감무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