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라이벌 의식에 분기점이 된 것은 창비와 문지가 폐간될 즈음에 일어났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었다.
이제 어떤 문학을 해야하는가?
여기서 백낙청과 김현의 결론이 차츰 벌어지기 시작한다.
- 백낙청의 경우
창비와 문지가 폐간됐다 해서 문학인들이 그저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80년대에는 군부정권의 눈을 피해 편법적인 출판방식을 활용하는 이른바 '무크지 문학'이 성행했다.
무크지는 책(book)과 잡지(magazine)의 합성어로, 나오는 간격이 뚜렷하지 않은 부정기간행물이었다.
무크지는 단순히 80년대의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것을 넘어서,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하나의 문화적 게릴라 수단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무크지가 바로 이문구, 송기원이 주도한 <실천문학>이었고,
여전히 백낙청은 <실천문학>의 한복판에서 비평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60년대 중엽부터 평론활동을 했음에도 요즘 곧잘 70년대 평론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데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 욕심으로는 ’80년대 평론가‘로 꼽혀봐야겠다는 생각이며 언젠가 ’90년대 평론가‘로 지목받을 야심도 사실은 아주 없지는 않은 터이다.
-백낙청, <1983년의 무크운동> (1988)
무엇을 숨기랴. 백낙청의 야심은 '영원한 현역'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세대론과는 무관하다! 그따위 사소한 문제를 넘어선 곳에 있다!"라는 선언인 셈.
그렇다면 여기서 '영원한 현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5.18 이후의 문학, 즉 '실천'의 문제였다. 백낙청은 문학을 문학 이상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으며, 그렇기에 문학의 현실 참여를 더욱 독려했다.
<시민 문학 ㅡ> 민족문학 ㅡ> 민중문학 ㅡ> 제3세계 문학>
궁극적으로, 다음의 발전 과정을 거쳐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한 맥락 속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 김현의 경우
한편, 김현은 백낙청과는 정반대의 길을 갔으니, 후퇴와 회귀의 길이 그것.
씁쓸한 것은 내가 유신세대나 광주사태세대의 사유양태를 어떤 때는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고...
내 육체적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 18세에 멈춰있다.
- 김현, <분석과 해석> (1988)
김현에게 4.19의 체험은 인생을 뒤흔든 막강한 체험이었던 고로, 일단은 전후세대로 불리지만 세대감각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백낙청과는 사정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80년대의 김현은 문학의 현실 참여에 뛰어들기보단, 프랑스 문학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바슐라르를 향한 각별한 관심이 그것.
그런데 정작 김현의 바슐라르 비평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바슐라르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결여돼 있었다고.
그외에도, <프랑스 비평사>, <제네바 학파 연구>,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 <미셸 푸코의 문학 비평>, <시칠리아의 암소> 등등을 써내며 프랑스 문학사 및 비평사의 계몽사를 쓰는 데 전력을 다한다.
김윤식 평론가는 이런 김현의 행보를, "물론 비평계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굳이 김현이 그 일을 해야할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는 한국문학사 전체를 지배하겠다는 백낙청의 야심에 비하면 매우 약소한 것이었다."라 분석한다.
대신 김윤식이 김현 비평의 금자탑이라 극찬한 작품이 바로 유작인 <행복한 책읽기>.
죽기 직전, 김현이 자신의 불문학 후계자인 이인성 소설가에게 넘긴 원고이다.
김현이 평소에 읽은 책에 관한 짤막한 감상과 비평을 모아둔 글뭉치일 뿐인데, 김윤식은 여기서 두 지평의 합일을 보았던 것.
'직관'과 '설명'이라는, 비평가의 사적인 감상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비평이 맞닿는 하나의 기적을 보았던 것.
- 백낙청 vs 김현, 그 승패는?
결국 김윤식은 김현과 백낙청, 둘 중 누가 이겼는지에 대해서는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단지 백낙청은 큰 야심을 품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 시도가 용두사미에 그칠 위험이 컸다는 것, 김현에게선 후퇴와 퇴보 의식을 지적하지만 그와 동시에 비평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
정리하자면,
백낙청 : 논리로서의 문학 ㅡ> 추상, 주장 ㅡ> 문학의 현실 참여
김현 : 해석으로서의 문학 ㅡ> 직관 지향 ㅡ> 자율적 비평
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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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마지막에 시리즈 어떻게 만든 거예요
공앱에서 글 쓸 때, 회색바 7번째에 있는 사각형 3개 있는 버튼 누르면 됨 ㅇㅇ 이번에 새로 생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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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근데 그러한 비판도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면서 정신승리함 ㅋㅋㅋㅋ 실제로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1권이 4장 김현 vs 김윤식, 5장 김현 vs 백낙청 순서로 돼 있음
시리즈 개추. 근데 프랑스 문학 소개는 뭔가 뜬금없긴 하네 ㅋㅋㅋ - dc App
김현이 불문과를 나오기도 했고, 프랑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음. 예부터 한국 비평은 프랑스의 인문학에 많이 의존하긴 했으니, 아예 성과가 없는 일이라곤 볼 수가 없지 ㅇㅇ
ㅇㅇ 그냥 뭔가 갑자기 스케일이 작아진 느낌이라서. 이문구 박상륭도 나중에 연재함? - dc App
ㅇㅇ 안 그래도 바로 다음에 쓰려고 했음 ㅋㅋ 아마 내일쯤 올라오지 않을까 싶음
오 개꿀잼 기대하겠음 ㅋㅋㅋ - dc App
행보는 백낙청이 더 마음이 가네.. 사르트르 빠라서 그런가
김현도 사르트르 많이 좋아하긴 했는데, 두 사람의 수용방식이 좀 달랐달까... 어쨌든 백낙청이 더 '실천'의 문제에 매달리긴 했음.
백낙청은 사회 참여하면서 뭔가 맘에 안 드는 것도 있고, 신경숙 사태 때 보였던 행동은 진짜 별로였는데 이걸 보니 백낙청의 행보가 이해가 가기도 하고 음.. - dc App
문학의 사회 참여라는 야망은 거대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을 실천하는 와중에 흙탕물이 되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함. 결국은 의의와 공적이 있고, 한계와 맹점도 있는 게 아닐까.
글 너무 재밌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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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이전 시리즈들 링크도 글에 포함시켜주면 안 될까?
ㅇㅇ 그동안 국문학 썰 풀었던 거 따로 모아서 정리해볼 생각임. 토지 한마당이나 라캉 썰, 카라마 가이드까지 넣으면 너무 번잡해질까봐 그쪽은 좀 고민 중...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김현은 이미 70년대부터 바슐라르 번역에 힘 써왔고, 80년대 이후에는 더욱 집중적으로 밀기 시작했어서... 그 부분에선 김현의 공로를 인정해야할 듯
백낙청 저렇게 보면 간지나긴 하는데 늙어서 한다는게 실없는 통일타령에 방북 꼽사리라는게 참
머 사람은 다 늙으니까...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 해도 백낙청도 세월의 흐름은 피해갈 수 없을테고
글 재밌게 읽었다 옛날에 김현 비평집 읽었던 기억나게 만든다 지라르 글이었는데 그때 뭔가 김현이 말의 근원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뭔가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네ㅋㅋ 유달리 프랑스 문학을 소개했던 것도 김현 비평스타일하고 관련된 거 같고 난 항상 김현이 한국적인 것을 원했지만 외국의 방식으로 찾아내려고 했다는 생각했거든 어쨌든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