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어떤 허무감 결정론적인 절망감에 대해서이죠. 이건 과거에 읽었던 실존주의 저서에 대한 나의 느낌이기도하죠. 어떻게 보면 독후감인 것이지 이것들은 실존주의적인 책들에 대해 느낀점들에 대해서입니다.
소위 실존적 문제라고 불리는 어떤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그것을 섬뜩함이라고 불렀죠.
그리고 우나무노는 그것을 삶의 비극적 감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간들은 울고 웃고 먹고 자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 우리라는 존재자들이 결국에는 비존재로 돌아간다는 그 공포, 저는 간혹 혹은 자주 이런 부질없음을 느낍니다.
제가 철학을 하는 이유 그리고 제가 회의론적 무신론자로 살지 않는 이유는 이 실존적 부조리 때문일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많은 대학생 회의론자들은 이 공포 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지만 저는 듣습니다. 무 라는 그 목소리 말입니다.
제가 과거 우리 인생의 결과가 무라면 멋대로 살아도 된다고 했을때 어떤 철학자들은 그것은 어떤 당위가 아니라고 그것은 시선의 차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들은 실체적 증거는 없지만 어떤 고뇌입니다. 제가 생각했던것은 이런것입니다.
한국의 친일파들이 있었습니다. 친일파들중에서도 가장 극악의 부류들 이라고 합시다. 동족을 팔아넘기고 호의호식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들중 대부분은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산다는것을 수백만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은 대부분 형편없고 끔직하게 산다는것 역사에 정의를 외쳐도 역사의 정의란 그저 강자들의 정의란걸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나치를 악이라고 부릅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선인 미국과 소련은 적어도 일상인들의 도덕관념에 맞아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으며 소련은 무고한 폴란드인들 몇십만을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폴란드 나치 부역자들 (예를 들어서 아우슈비츠 관리자였거나 관료였던 사람들)을 자신들의 관리자로 편입했습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싸워준 20만 폴란드 용사들에게 빵벌레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이 공산화되게 방관했던 그들의 조국으로 꺼지라고 비난했습니다. 독일에서 최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하류층 독일인들은 점령지에서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압니다. 역사란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면 안된다는것을 세상에는 정의가 실현되고 악인들이 심판받는다는것을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의 인간들이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세상이란게 간혹 보이는 이런 부조리가 실존한다는것을 확신한다면 우리 인간들이 확고한 정의가 있다해도 과연 그 정의를 따를까요? 과거 칸트가 말하길 만약 이 세상이 그런 곳이라면 정의는 이상은 될지언정 실천방안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어떤 당위나 꼭 그래야 된다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향성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세상에 신이 없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인간들은 과연 선하게 살까?
저는 오직 이것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수겠지만 이런 세상에서도 열심히 선하게 살 사람들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삶을 감싸는 검은 그림자는 이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습니다. 이 문제가 저의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이 문제가 현대 철학에서 다루기 힘든 투박한 주제임을 압니다. 그러나 칸트의 말대로 우주의 끝을 알수 없다해도 인간들이란 족속들은 분명 우주의 끝에 대해서 질문할것입니다.
인생은 부조리합니다. 결국엔 다 죽겠죠. 과거 우나무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사흘안으로 또는 400만세기 (이까짓 것은 아무래도 좋다.) 안에 문화나 과학이나 예술이나 미나 진리나 선이나 정의나 기타 이것들과 비슷한 모든것들을 받아들이는 인간 의식이 없어져 버린다고 해도 나는 굳이 문화,과학,예술,선,진리,정의 등... 이 모든 아름다운 개념들에 대해서 재론해야 될것인가?"
삶은 허망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반복되겠죠.
저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떤 해독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독서를 많이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는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해독제가 있습니까?
독서 갤럼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철스퍼거 안녕? 빈 종이가 무섭고 허무하고 덧없게 느껴지는 건, 너에게 그걸 채울 능력이 없기 때문 아닐까?
선생님 사람들은 보통 답을 찾고 싶어하지도 않고 답이 없다고 해서 허무감을 느끼지도 않으며 그때그때 격변하는 세상속에서 적응하며 살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실함으로 포장된 비성실함입니다. 진정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진정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를 잊고 산다는것이 신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을 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그저 자신의 마음에 편안을 준다는 이유로 기도를 하는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삶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철학 어쩌고 하는 사람들을 멀리 하려고 합니다
뭘 생산하지도 않으면서 세상 괴로움은 혼자 다 짊어진척 하거든요
그게 인간삶의 비극이죠. 영원한 허무에 빠져 사는것 그것을 잊고 사는것이 진정한 방도일지도 모르죠. 마치 아무생각없이 사냥
꾼이 자기를 죽일려는것을 이해죠차 못하는 사슴처럼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예 그런것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이새낀 또 뭔소리하는거야 미국 학생의 60%가 실존적 공허를 느끼는데 허무감을 안느끼긴 뭘안느껴 이 씨발 도킨스 역시 심리학레전드 peterson's Innovation! 오늘 내가 져도 이겨!! 도스토옙스키 영원하라!! 솔직히 내가 슬라보예지젝보다 대단해!!!! 여보세요 거기 119죠? 오늘 포스트모더니스트들 갓터슨이 다 죽여버릴테니까 엠뷸런스 좀 불
사 씨들을 피해야 겠군요 오늘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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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보통 초월자란 생각도 하지 않으며 실존에 관심도 없이 삽니다 선생님.. 장난인줄 알았는데 진심인거 보고 놀랐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실존에 관심이 있어도 실존에 관심있는 분들이 유의미한걸 생산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함 없지요.. 실존 고민해서 뭐하셨다고 그러고 사십니까 선생님.. 심지어 즐겁지도 않다고 자기고백들 하시는데 왜 그러시는건가요 선생님..
철학도 유의미한 방향을 찾아야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선생님.. 반우울증 망상 계속 하면 생각이 깊어지는게 아니라 마음의 병이 깊어집니다 선생님.. 존댓말하는 상대방한테 다짜고짜 욕이나 박는 인간성이나 갖고서 말이죠..
뭔씨발개좆소리하고있네너내글제대로읽은거맞냐그렇게해석될여지가일체없는글인데씨발좆같네걍병신갤러리
마음이 아프신 분들 보이면 가차없이 내쫓으셨던 그분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읍니다..
걍씨발암만봐도좆유입새끼같은데개노잼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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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안즐길 이유는 없죠. 그렇다면 우리는 허무주의 완벽한 허무주의 모든것을 체념한체 모든것을 "완벽히" 즐기는 허무주의로 가야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이렇죠. 도덕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남이 죽든 말든 신경 안쓰는 니체 선생께서 말한 그 허무주의적 인간이 되는것이 안될 이유도 없으며 합리적이기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모든것을 즐기는것 그것이 진정한 공포죠 - dc App
그런 당신에게 <의미의 지도>를!
그리고 그와 함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어보세요!!
여기서 조던 피터슨은 약팔이 취급 받던데요.
그리고 죽음의 수용수도 모순적입니다. 그는 의미를 발견한다고 "선언"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치 공산주의의 근거랍시고. 공산당 선언을 인용하는 사람 같네요.
의미를 발견하는거라면 도데체 누구의 기준으로 발견하는 것일까요? 나치당의 의미 발견이 틀렸으며 만들어진 의미라고 누가 확인할수 있겠습니까?
조던 피터슨 그 양반 의미에 대한 객관적 근거는 하나도 없던데요 그가 제시한걸 일종의 실용주의죠 그리고 그양반 철학과도 아니잖아요 - dc App
나치당이 의미를 발견하긴 뭘 발견해 이새끼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건 고난을 이겨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럼 의미가 언제부터 객관적 근거를 통해 설명될 수 있는 가치였냐
반박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인 게 아니다 우리 세계는 무한히 많은 다중우주의 일부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잖아 그것처럼 만물이 허무하다는 주장도 반박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사실은 아니지
애초에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진 모든 고난과 시련에 의문을 품을 수 있을망정 그 답에 대해선 알 수 없도록 설계된 존재니까 죽음의 수용소에서나 다시 읽으셈 너 암만봐도 제대로 안읽은거같음
그럴 땐 불교 공부를 하세요 괜히 서울대, 대기업 출신 사람들이 출가하는 게 아님 불교를 알면 답이 조금 보일 거임
나쁘지 않죠 그러나 그것이 실증적인 과학적 이성을 기반으로 문제를 풀지는 않죠 불교는 훌륭한 지혜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처럼 믿음의 도약과 모순을 견더야죠 무아론과 윤회 그리고 부쳐의 지혜에 절대성에 대한 신뢰 말입니다 - dc App
인간의 의지는 후대에로 이어진다
그 후대는 몇천만년후 적어도 우주 멸망과 함께 사라지겠죠 - dc App
그냥 나가서 걷고 와
그럼 너는 시지프 신화야 - dc App
시지포스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극적인 웃기는 것이 아닐까요? 시지포스는 이성의 힘을 기반으로 신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부조리하고 목적도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부여한 의미도 가치도 목적도 자의적이며 자신의 망상이며 광기라는것을 - dc App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신실한 신앙인들을 비웃지 않았습니까? 그는 광기어린 광신자들을 희화화 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는 아까의 사람들 처럼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의적인" 의미나 목적을 "보편적인" 것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저항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미를 만듭니다. 그러 - dc App
그러나 그는 아까의 사람들 처럼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의적인" 의미나 목적을 "보편적인" 것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저항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미를 만듭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투쟁이 어떠한 변화
도 만들지 않을것이라고 진지하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적의 정당성이 미치광이 살인마가 무고한 어린아이들의 목을 베어서 자신의 피의 저택을 장식하는것만큼 정당성 없고 보편적이지 않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영웅적인것일까요? 더욱더 잔인한 지나치게 잔이한 이성은 합리성은 그를 비웃고 있습니다. 최고의 이성은 그를 비웃고 있습니다. 마치 그가 비웃은 신앙인들 처럼 말이죠.
동감함. 무존재가 존재보다 낫다면 반출생주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 dc App
그래서 요점이 뭐임?
인생은 허망한데 논리적으로 이걸 극복할 철학적 주장이 있을까 - dc App
인생이 허망하단게 논리적으로 나온 결론 아님?
그렇지 그러나 인간들이 그렇게 살수 없다는것이 부조리지
저는 더 처절할 정도로 죽음과 삶과 무의미를 깊이 탐구한 사람을 팠습니다. 어떻게 님은 우나무노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아무튼 전 사르트르 뒤 키르케고르, 막스 슈티르너, 페소아를 파다가 메인랜더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메인랜더와 견줄 자는 레오파르디정도밖에 없을 거 같아요. 그렇게 된 후 점차적으로 저는 삶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한번 이런 "가속주의"적 해독제를 추천합니다. 독일어만 있고 영어 번역도 없고, 그냥 레딧의 한 팬이 100쪽 정도로 영번역한 것만 있지만 그거로도 충분할 겁니다.
https://youtu.be/nnJmA9_dkP0
이 영상부터 메인랜더 시작하세요
다행이네요 저도 비합리적인 희망을 품죠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 dc App
찾았습니다. 즐거운 학문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