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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리 관료제로 먹고사는 공직자 시선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판한 책이다. 새로운 시각에서 문화예술과 국가 행정 관계를 고민하게 해줬다.

헌법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느 밴드의 멤버가 다른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나라 지원금을 타는 것을 비판했다. 자신들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힘겹게 음악을 하는데 왜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그렇지 않냐는 뜻이었다. 반대로 문단에서는 자신들이 투쟁해 쟁취한 권리인데 왜 이걸 가지고 지적하느냐고 비판했다. 누군가는 나라에 의존하는 것을 비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권리라고 주장한다. 해답 없는 문제로 보인다. 분야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국가에서 문화예술계 지원 방식을 크게 세 모델로 소개한다. 프랑스는 국가가 강력히 문화를 지원하는 모델, 미국은 자유주의를 추구하며 국가와 문화를 철저히 분리해 직접 정부에서 투자하지 않으려는 모델, 영국은 프랑스와 미국의 중간 태도를 보이며 국가가 문화계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영국식 모델이 좋다고 본다. 하나 확실한 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희대의 멍청한 짓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하나의 노동자로 인식하고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명시하고 법으로 정한 권리임을 내부에서부터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밥벌이한다는 생각 자체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이 누릴 권리 자체를 스스로 거부하다니. 이건 이거대로 심각한 문제다. 내부에서조차 고급 예술이니 저급한 문화니 하며 구분하거나 라떼는 말이야~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썼어~ 굶어가면서 창작하는 건 한심한 짓이야~ 대중이니 시장이니 다 필요 없어~ 수준만 낮아져~”이러며 다른 사람의 창작 행위를 위한 노력을 깎아내리는 짓은 제2의 최고은을 만드는 일이다.

다만 후반부에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우호적이며 낙관적인 입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 거부감이 들었다. 왜 굳이 통일 문제까지 언급할까. 역설적으로 박근혜 블랙리스트 비판과 동시에 그 당위성도 내포한 듯하다. 책에 민족주의적 성향이 엿보여 불만스러웠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해외 문물 탓에 우리 문화가 죽는다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다. 아니, 이미 예전에 질리도록 나왔다. 실제로 그런 주장을 하며 스크린쿼터제처럼 다른 문화산업도 그렇게 우리 것을 지키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문인들의 하루키 등 일본 문학 비판과 공격, 해외 문학 탓에 한국문학이 죽는다는 주장까지 들은 바 있다. 나는 그런 배외(排外)주의적인 사상에 반대한다. 제발 문화 발전과 교류에 북한 좀 엮지 말자. 프로파간다뿐인 문화로 변질된 좀비 같은 체제와 함께 갈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러니 나도 빨리 문화예술계 종사자 지원금을 신청해서 받아야 하는데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도 나지 않고. 책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 감상문도 초고를 적어둔 지 일주일 넘게 지나서야 간신히 쓰는 거다. 나도 좀 먹고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