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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비판은 역시 ‘현실성이 없다’일 것입니다.
이는 매우 마법 같은 표현입니다. 현실이 아닌 환상을 다루는 창작물에 대해서도 때론 ‘현실성이 없다’란 비판이 유효한 경우를 우리는 생각 외로 많이 접합니다.
한때 인터넷에서 밈적으로 떠돌기도 했던, ‘공작령의 2만명의 기사,’나 ‘6kg 단검’이 있겠죠.
물론 저도 저런 것들이 나오는 해당 작품들을 읽어본 적 없어서 섣불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읽어본 독자들은 소설 속 세계에선 말이 된다, 등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펼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읽지도 않은 이들의 무분별한 비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반론을 위해 작품 내적으로 논리적 설명이 있다는 걸 읽은 이들이 굳이 말해야할 정도로 현실이 아닌 것을 다루는 창작물에서조차 은연중 ‘현실적이지 않다’란 비판은 강력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추리소설은 많은 장르들이 그러하듯, 태생적으로 이러한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직면한 장르였습니다. 추리소설만의 단점이나 특이점은 물론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은 으레 새롭게 등장하는 부류가 직면하는 과제였습니다.
누구나 아는 셜록 홈즈나 애거사 크리스티와 포와로, 마플, 그리고 여러 탐정들.
흔히 말하는 영미 문학의 추리 소설의 황금기를 상징함과 동시에 본격적인 시발점과 같은 이 거대한 장르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셜록 홈즈를 모르는 이들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추리소설 문학 연구자들도 일부분 인정하듯, 이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은 제법 효과적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추리 소설에 대해 가지는 생각들,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그걸 푸는 탐정 등 여러 요소들은 사실 비현실적입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범죄는 대부분은 그런 수수께끼와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추리소설들이 쓰인 시대에서의 범죄는 가난과 연관된 범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걸 푸는 탐정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는 범죄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에만 집중할 뿐 피해자나 범죄의 사회적 문제 등이 존재하지 않는 점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비평가들은 이러한 추리소설 자체가 중산층들의 유희라고 때론 비판하곤 합니다.
자연스럽게 끔찍한 비극인 범죄는 수수께끼, 한낱 유희가 되고, 실제 범죄와 거리가 먼, 수수께끼로서의 범죄와 그걸 다루는 탐정들이 주가 됩니다.
앞서 말했듯 추리소설 연구자들조차 이러한 비판 자체는 일부 수긍합니다.
물론, 결국 재미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니냐? 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추리소설의 흐름을 생각하면, 의외로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들이나 독자들조차 이러한 비판을 제법 진지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추리소설의 황금기, 독보적인 셜록 홈즈를 시작으로 점점 수수께끼에 더 치중하게 되는 엘러리 퀸이나 반 다인, 존 딕슨 카 등으로 추리 소설의 황금기가 지나가자, 놀랍게도 그 본고장인 영미권에선 귀신 같이 몰락합니다.
하드보일드, 스릴러나 첩보 등 추리소설의 범주 하에 있지만, 더 이상 수수께끼 대결이 아닌 다른 분야로 바뀌고, 오늘날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범죄의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푸는 탐정 이야기는 영미권에선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추리소설을 조금 파보면 밀실살인의 거장으로 널리 알려진 존 딕슨 카조차 미국 문학 사이트에서 잊혀진 작가로 소개되는 등 한때 부흥했던 곳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추리 문학의 황금기는 일본에 이식되었고, 독자적인 발전을 이어나갔습니다.
엘러리 퀸 등이 주장한 독자와의 공평한 수수께끼 대결이나 존 딕슨 카의 기괴한 분위기와 밀실 살인 등은 일명 ‘본격 추리소설’이라 불리며 에도가와 란포나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유명한 킨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등으로 20세기 초중반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우려먹다보면 질리는 것이 사람의 입맛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수수께끼 놀이에 어느 새 독자들은 질리고, 흔히 말하는 사회파 추리 소설이 일본에서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현실의 범죄에 집중하면서 경찰 등이 등장하는, 말 그대로 추리소설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작품들이 한 동안 인기를 끌면서 모든 걸 끝낼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의 입맛이란 본디 간사한 법입니다.
사회파 독점이 이어지자 어느 새 추리 소설 독자들은 옛 맛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추리소설의 본질은 곧 수수께끼란 결론 끝에 이른바 ‘신본격’이라 불리는 부류가 나오면서 또다시 독자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세이료인 류스이의 ‘코스믹’ 또한 이러한 신본격에 해당될 만한 괴작입니다. 이 소설에 대해선 몇 년 전 한 블로그의 감상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일본 추리 소설의 3대 기작이라 불리는 것들을 읽으면서 인터넷을 찾던 중 발견한 글이었는데 그 글에 따르면 분명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마이조 오타로가 쓴 헌정 소설 '쓰쿠모주쿠'가 먼저 출간되기도 하였는데 드디어 한국에도 출간된 이 괴작은 분명 그 기대에 충족할 만한 작품입니다.
‘코스믹’은 작가 소개 등에서 고베 대지진의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 등 말 그대로 세기말의 분위기 속에서 나올 법한 괴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4년, 365일 동안 ‘밀실경’이란 자는 1200명을 1200개의 밀실에서 살해하겠다는 예고장을 보내고, 그는 실제로 수십 명을 밀실살인으로 죽여 나가기 시작합니다.
하루에 3명씩 밀실살인으로 죽여 나간다는 점에서 일단 정신 나간 설정입니다. 심지어 작가는 천 쪽이 넘는 이 작품 중 첫 400 여쪽을 순전히 피해자들과 살해당하는 장면에만 치중합니다.
희생자들의 면모는 다양합니다. 당시 일본 사회의 여러 다양한 사람들처럼 다가오고, 세기말적 분위기가 물씬합니다.
무엇보다 ‘밀실’에 대한 여러 의미들을 보여주면서 흡사 세기말을 앞둔 흉흉한 분위기 속 일본 사회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내 서브컬쳐적인 세상으로 말 그대로 드리프트를 합니다. 물론 400 여쪽의 밀실살인들 속에서 조금씩 소개 자체는 있었습니다.
‘JDC’라 불리는, 일본 탑정 클럽이라는 탐정들로 이루어진 이들이 존재하고 경찰과 협력하며 실제 살인사건들을 해결한다. 탐정소설이나 만화에 흔히 나올 법한 설정입니다.
그 소속 탐정들 또한 기괴합니다. 극단적인 일본 추리 만화의 탈을 쓴 무언가에 나올 법한 이들입니다.
항상 틀린 결론만 내리는 탐정, 증거들만 갖추어지면 저절로 모든 진상을 도출하는 탐정 등 슬슬 이게 정말 우리의 관념상 추리소설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사실 1200명을 밀실살인을 하겠다면서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끝없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점에서 이미 작가가 어떤 정상적인 트릭을 내놓을 것이란 생각 자체는 사라지기도 합니다. 애초에 중요하지도 않고요.
책 자체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그전까지 쌓아온 것들을 가지고 노는 유희에 가깝습니다.
중간부터 등장하는, 예전에 살해당한 추리소설 작가가 보내온 수수께끼 같은 원고는 현재 일어나는 밀실살인들을 소재로 쓴 듯한 추리소설이기에 메타적인 요소도 돋보이고, 이러한 1200명을 밀실살인을 한 사건들이 과거에도 반복되었다는 역사가 던져지면서 존 딕슨 카풍의 기괴한 분위기까지 끌어들입니다.
아에 성별 모호함을 통한 트릭 등을 작중 등장한 원고를 논하는 탐정들의 입으로 언급하지만, 동시에 독자들에게 이러한 트릭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등 황금기 시절 작가들의 트릭들도 교묘하게 사용하고요.
‘JDC’ 자체가 존 딕슨 카의 약칭이기도 하다는 것을 읽으면서야 뒤늦게 깨달았지만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괴하지만, 무엇보다도 니시오 이신이 신으로 추앙한다는 작가 소개에서 알 수 있듯 탐정들은 지극히 서브컬쳐적입니다.
주인공격이라 할 수 있는 쓰쿠모주쿠는 절세미남에 조건만 맞춰지면 곧바로 진실을 알 수 있는 특수 능력자고, 그를 사랑하는 이복여동생이나 기괴한 캐릭터적 말투를 쓰는 미소년 라이벌 탐정 등등 익숙한 것들이 튀어나오면서 온갖 것들이 버무려집니다.
동시에 츠쿠모주쿠가 해외에서 수사 중인 잭더리퍼 사건처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도 진상에 가까워질수록 서로 얽히고요.
소설의 핵심적인 트릭 자체는 말장난이긴 하나 개인적으론 제가 일본인이었어도 눈치 못챘을 것 같습니다. 말장난 자체를 많이 하는 작가라곤 하나 강박증적으로 이걸 즐겨야한다가 아닌 이상 번역본으로도 충분할 듯합니다.
사건의 진상 자체는 놀랍게도 일단은 논리적으로 해결됩니다. 물론 이것이 정말로 말이 되는가?
문득, 한 박사 과정 선배의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기억납니다.
논문 주제가 정신분열증 환자와 일반인의 논리 구도 비교였나 그랬습니다.
일반인의 경우,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더라도 사실인 문장을 더 선호하는 반면, 정신분열증 환자는 말이 안 되는 내용이라도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는 쪽을 선호한다 가 그 발표의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이 소설도 마치 그렇습니다.
신본격이란 녀석 자체가 말 그대로 수수께끼, 논리적 퍼즐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만큼, 분명 논리적으로 옳다면, 그것은 곧 추리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애초에 1200명을 밀실 살인한다는 배경의 작품에서 이게 말이 되냐? 를 따지는 건 말이 되고? 라고 작가 본인부터가 마치 되묻는 듯합니다.
그 악명만큼 정신 나간 작품이긴 합니다. 무엇보다 그 후속작이라 할 ‘조커’는 작중 배경으로 이전에 일어났다는 설정인데 읽다보면 이 ‘조커’도 번역예정이라고 하니 읽어야할 듯합니다.
일본 추리소설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 그러한 장르가 낳은 괴작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니시오 이신류의 원조를 맛보고 싶다는 분들이라면 추천합니다.
이건 귀하군요 - dc App
이걸 읽네;; 이거 정박아가 쓴 소설같다던데
시놉시스는 완전 내 취향이다
본문에 스포 있음?
님은 뭐전공인지 물어봐도됨?
아... 쓰쿠모주쿠가 먼저 번역된 거고 jdc 시리즈는 아직 번역이 안 됐었구나
배송 기다리는 중인데 리뷰 ㄱㅅ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논증이 건전성보다 타당성을 더 중시한다는 건가? 흥미롭네. - dc App
오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