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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소설의 첫 문장 중 하나에 <안나 카레니나>의 다음 문장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본문 인용은 전부 펭귄클래식 번역본 기준이다.) 그렇지만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안나 카레니나>에는 적어도 세 개의 불행한 가정과 한 개의 행복한 가정이 등장하기는 한다. 첫 번째 불행한 가정은 저 유명한 문장 바로 다음부터 파국을 맞은 채 등장하는 오블론스키와 돌리의 가정이며, 두 번째로는 중반부 시점부터 이혼만 하지 않았을 뿐 완전히 산산조각난 카.레닌과 안나의 가정이 있고, 세 번째로는 정열적인 열기로 불타오르다가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브론스키와 안나의 가정이 있다. 그들과 반대되는 행복한 가정에는 또 다른 주인공 레빈과 키티가 있다. 안나가 자살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니면 레빈의 결심으로 책이 끝나는 시점까지도 그 ‘닮음’과 ‘저마다의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다만, 첫 문장에 대해 작가 톨스토이가 힌트를 준 것만 같은 문단은 찾아낼 수 있었다. 7부 23절을 여는 두 개의 문단이다.
가정생활에서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거나 사랑으로 의견 일치를 보아야 한다. 부부 사이가 불명확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해가 지나면서 많은 가정에서 부부가 권태를 느끼는 구태의연한 상태를 이어가고 그 때문에 완전한 불화도 완전한 화목함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마치 극세사로 자수라도 뜨듯이 섬세하고도 착실하게 소설을 진행시키던 톨스토이는, 느닷없이 가정의 화목함의 조건을 이 문단들을 통해 직접 이야기한다. 이 부분은 <안나 카레니나>가 끝을 향한 마지막 변속을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며 첫 문장에 대한 자답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저 두 개의 문단을 거칠게 해석하면 ‘불행한 가정’은 ‘부부 사이가 틀어져 완전한 불화를 보이는 가정’과 ‘부부 사이가 불명확해 되는 일이 없는 가정’이고 ‘행복한 가정’은 ‘부부 사이가 사랑으로 의견 일치를 보여 완전히 화목한 가정’일 것이다(물론 <안나 카레니나>가 보여주는 ‘행복한 가정’도 항상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불행한 가정’은 ‘이도저도 아닌 상태’의 가정이다. 오블론스키의 가정, 안나의 도주 전의 카.레닌의 가정, 후반부의 브론스키의 가정이 그렇다. 그럼 가정들이 이렇듯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빠져드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브론스키와 안나가 누리고자 했던 삶은 정열적인 사랑의 삶이었다. 그들은 시골에 내려가 영지를 가꾸며 그를 이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진솔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기만이 깃들어 있었다. 브론스키는 여행을 갔을 때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전문 화가인 미하일로프와는 그림을 대하는 시선의 깊이가 끝내 달랐고, 레빈이 유쾌하지만 어찌 보면 불쾌한 손님인 베슬롭스키를 쫓아낸 것과는 달리 그를 자신의 영지에 머무르게 해 같이 놀이를 즐겼다. 이렇듯 약간씩 기만적인 태도를 보이는 브론스키, 카.레닌과 완전히 이혼하지 못한 안나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불명확한’ 상태에 접어들고 불행의 그림자가 깃든다. 이는 최대한 솔직히 서로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의 완전한 다툼과 이해로 화목함을 유지하는 키티와 레빈의 가정과는 반대이다. 그럴수록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갈구하게 되고, 그것 만이 모든 불행의 해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모든 불행을 해결할 단 하나의 방안 따위는 없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에 앞서,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인상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가장 주목했던 지점은 대부분의 인물들이 꽤 감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교계를 드나들어 사람의 심리를 읽거나 동조하는데 가장 정통할 귀족들이 그토록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톨스토이의 기막힌 필력 덕분도 있을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이들 대부분이 오히려 사교계에 억눌려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두 주인공 안나와 레빈은 그 중에서도 가장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7부에서 안나의 변덕스럽고 날카로운 심리는 읽는 사람이 더 짜증날 지경이고, 레빈은 정감이 가려고 해도 갑자기 이상한 감정을 분출하곤 해 약간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중요한 것은 그 두 등장인물, 아니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허식과 기만으로 가득 찬 사교계에서 변덕스럽지만 진실한 감정을 분출하려는 욕망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욕망의 분출 방식이 한계를 맞이해 바뀌는 것이 <안나 카레니나>를 관통하는 중요한 구조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 구조가 인상깊게 드러난 곳은 2장 후반부 키티의 온천 여행 및 3장 초반부 레닌의 농사 부분이다. 심적으로 고통받고 있던 키티는, 온천에서 기독교적 신앙에 따라 병자를 위해 봉사하는 마담 스탈 그리고 바렌카와 친분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병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그녀 자신도 그들처럼 고매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버지로부터 마담 스탈에 대한 악평을 들은 이후로는 그들에 대한 환상이 깨지게 되고 그 길이 자신이 진심으로 바라던 길이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청혼에 실패한 레빈은 농부들과 같이 풀베기를 하며 노동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농부를 아내로 맞이해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마차에서 키티를 보며 자신은 그런 삶을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두 이야기의 연결은 연인이 될 두 사람의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동경하는 삶의 방식일지라도 가슴이 말하는 진실과 상충된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가슴이 말하는 선(善), 내재되어 있는 신앙의 중요성이야 말로 소설 마지막에서 레빈이 얻는 깨달음이며 주제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카.레닌은 브론스키의 딸을 출산하고 앓아누운 안나를 보며, 깊은 신앙에 눈을 떠 안나와 브론스키 모두를 용서하게 된다. 그러나 고매한 신앙의 경지로 맞닥뜨린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 그는 결국 신앙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영매의 손에 모든 일을 맡기는 지경으로 추락해버린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선과 신앙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적어도 톨스토이는 그들이 위선으로 가득한 이성의, 세상을 비극적으로 바라보는 오만한 자세를 이겨낼 수 있는 가치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최후를 앞두고, 안나는 사랑만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브론스키의 행동 하나하나에 질투심을 느끼는 악녀로 변해버리고 만다. 자살 직전 그녀의 시선은 오만하고 비뚤어져 있다.
'정말이지 괴로운데, 거기서 벗어나라고 이성이 주어졌다는 말이지. 그래, 벗어나야겠다. 이 모든 걸 바라보는 일이 역겨운데, 더 이상 볼 것도 없는데 왜 촛불을 끄지 않는단 말인가?'
그녀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8부에서, 레빈 또한 형 니콜라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녀와 비슷한 비극적인 감정에 자살에 대한 고민을 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가정과 업무를 항상 변덕스러울지라도 진심으로 대했던 그는 끝내 자신의 마음 속에서 선과 신앙을 찾아낸다. 비록 그 깨달음이 앞으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가 결코 스스로를, 그리고 가정을 비극으로 이끌지는 않도록 해줄 것이다.
‘계속해서 나는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고, 계속해서 논쟁하고, 느닷없이 내 생각을 말할 것이다. 내 마음의 가장 고결한 부분과 다른 사람들 (아내까지도 포함해서) 사이에는 계속해서 벽이 존재할 테고, 계속해서 나 자신의 공포를 이유로 아내를 힐난하고 그렇게 한 걸 후회할 것이고, 내가 왜 기도하는지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기도를 하겠지. 그러나 내 삶은 이제, 내 삶 전체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와 상관없이, 매 순간이 예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善)이라는 확실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삶에 그것을 불어넣을 힘이 있다!’
감상문은 개추
독린이가 아니신데여 안카 재독하고싶어지네요..
님... 나랑 같은거 읽은거 맞음? ㅠㅠ 필력에 감탄하고 감상에 두번 감탄하고감...
이게 독린이?? 독린이 컷 뭐이리 높누 - dc App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글 잘 쓰네요 개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