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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고독”이란 강렬한 제목에 끌려서 독서를 결심했다.
이 소설은 마치 부엔디아 가문의 딸들이 현관에서 짜던 정교한 자수들 같이, 부엔디아 가문의 일대기를 촘촘하게 교차하면서 강렬하고 아름답게 표현해냈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돋보이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있다가도 때론 작가의 거친 통찰력이 보이는 부분들, 특히 아우렐리오 부엔디아 대령의 전쟁에 관련된 비통함, 에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을 보듯이 부엔디아가의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들을 접하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만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 사이에는 우리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고독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고독이 가득한 시간에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떻게 누구와 사는지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 수 있어야만 한다.”
부엔디아가의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하든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신념, 또는 도덕성, 에 의해서 산다, 그것이 가정의 불화를 불러오거나, 고독이 가득한 비극으로 끝날지라도 말이다.
가정에 불화가 있을 때면 믿을만한 사람은 역시 우르슐라다, 이 소설의 작고 강한 히로인. 하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한 그녀의 진심 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원하던 화목한 가정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 마음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알기 어렵고, 또 안다고 해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가족들 마저도 내면 깊숙한 곳은 전혀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마음에 돼지 꼬리가 붙어있을 수도 모르고 말이야?
이 소설은 작품의 후반으로 갈수록 잦은 회고와 함께 “고독”을 언급한다, 마치 책 자체가 마무리, 또는 죽음, 을 앞두고 짖은 고독에 빠지는 것처럼.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기보다는 자기만의 내면으로 빠져들고, 점차 서로의 진심이 뭔지 이해를 못 하기 시작하면서 사이는 멀어져만 간다. 가족들의 시끌벅적한 저녁식사 마저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기억일 뿐이다; 식탁에 앉아있던 식구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떠난다, 영원히.
부엔디아가의 결말을 알고 책을 덮을 때 즈음이면 이제 우리들이 고독의 시간을 가질 때다: 백 년의 한정된 수명, 이미 예언되어있는 죽음,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시간.
이 작품은 심심풀이로 영화 보듯이 즐길 수도 있지만, 깊이있게 고민할 점도 많다, 훌륭하다.
p.s. 종이책에 있던 족보가 큰 도움이 됐다. 이 정도면 러시아식 아버지 이름 물려 내림은 천사다.
영역으로 읽었네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