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를 안 하는 데가 없음

당시 중국의 후당, 10국 중 하나인 오월, 일본, 그리고 심지어 거란까지(거란 사신단 35명이 후백제에 왔고, 이걸 호송해서 배웅했는데 풍랑을 만나 산둥반도에 난파되는 바람에 다 잡혀 죽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나옴)

아마 왕건이 나주 일대를 점령한 게, 견훤의 이런 외교활동 시도를 견제하고 방해하기 위한 목적도 컸을 것 같음.

견훤의 계획대로 거란, 일본이 같은 편 먹고 고려를 쳤다면 상당한 힘이 되어줬겠지만, 거란은 일단 중국 본토부터 먹으려 들었고 일본은 내부 혼란으로 자기 앞가림하기 힘든 상황이라 후백제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오판이긴 했지만 원교근공의 기본원리는 진짜 잘 지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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