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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소년이 어른이 되는 이야기로 읽었다. 다만 주인공 한스는 어른이 되고자 해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스는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고 좋은 성적으로 신학교에 들어간다. 한스는 그 전부터도 계속 빨리 어른이 되고자 했기에 마을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학교에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신학교에서 사귄 유일한 친구인 하일너는 그런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간다. 한스도 점점 쇄약해져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릴적 놀던 거리를 보며 다시는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한스는 이후 기계공 견습생이 되었고 몇명의 견습생과 아우구스투의 축하를 위해 술을 마시러 나왔다가 집에 가는 길에 죽었다.


결말을 보기 전까지 수레바퀴 아래서는 작가의 다른 작인 크놀프와 대칭점에 있다고 생각했다. 크놀프는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자유롭고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였고 한스는 비록 중간에 꼬였지만 이겨내며 진정한 어른이 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스는 그러지 못했다.


한스는 왜 죽었어야 했을까? 나는 하일너가 자살했다는 소식과함께 평범한 삶을 갖게 되는 한스로 이 작품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거 없이 한스는 죽었다. 아마 한스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려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아이가 될 수도 완전한 어른이 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한스는 그 끝에 사랑과 노동, 사람들과 어울림이라는 중요한 것을 경험하고는 죽어버린 것이다.


한스가 신학교를 버티지 못하고 기계공이 된것도 중요해보인다. 비트겐슈타인과 예수의 예를 보듯이 삶이란 율법학자들은 몰라도 목수의 아들은 아는 것이고, 말로 할 수 없어 침묵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스는 그 짧은 시간 사랑에 가슴아파하고 노동에 지친 몸으로 그동안 몰랐던 진정한 삶을 느끼고 삶을 다한 것이다.



엠마 나왔을때 약간 장난을 잘치는 엠마양 같았다... 엠마 눈나... 헤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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