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나오야는 순수문예주의자고, 고바야시 다키지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소설가였음
얼핏 보면 절대 교분이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고바야시 다키지는 시가의 문학을 경애하였고,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는 일도 없었다고 함. 어릴 적부터 습작을 시가에게 편지로 보내 평가를 부탁하기도 했고, 답을 받기도 하며 친해졌으나, 실제 만난 일은 단 한 번이었음.
1968년 출간된 고바야시 다키지 전집 추천문을 쓴 시가 나오야는, '고바야시 군은 내가 나라에 있었을 무렵 찾아와 묵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기모노 가게 점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는 성실하며,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특별고등경찰의 고문으로 죽음) 죽지만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살아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고 쓰고 있다.
시가는 고바야시 다키지가 죽은 후 일기에 '고바야시 2월 20일 체포되어 죽다. 경관에게 살해당한 듯하여, 정말로 불쾌하다. 한 번 만났을 뿐이나 나는 고바야시 군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 좋아하게 되었기에 암담한 기분이다.'라고 쓰고 있다.
또한 고바야시의 죽음 후 4일 뒤, 그의 어머니에게 조문 편지와 함께 조의금을 전달하며 '영식(남의 자식을 높여 부르는 말)의 죽음을 신문으로 알게 되어 실로 슬프게 생각합니다. 전도양양했던 작가로서도 실로 안타까운 일로, 만난 적은 단 한 번이었지만 인간적으로도 친밀한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부자연스러운 죽음의 모습을 전해 듣고 암담한 마음뿐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사실 이 시기만 해도 특고(특별고등경찰 : 사상 관련 범죄 전담으로, 강압적인 수사와 고문으로 일본인들에게도 악명이 높았으며, 조선인들의 독립운동 탄압과 색출도 이들의 역할이었다)의 사상범 감시와 탄압이 심했던 시기이기에,
시가의 이런 행동은 위험을 감수하고 행한 것이었고, 그만큼 그들의 맺어짐이 실제 만남은 단 한 번이었음에도 컸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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