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觀淫>

*“띵.”
알림음이 울렸을 때 A는 황급히 휴대폰을 확인했다. 혹여나 그 사람에게 연락이 오지는 않았을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초조하게 기다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미 A의 눈은 하도 펑펑 울어대서 눈병이 난 것 마냥 눈이 시뻘겋게 충혈됐고, 눈꼽이 잔뜩 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 하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광고) 헤어살롱 OOO OO점...”
광고 문자였다. A는 안도할 수 없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어제 들어갔던 커뮤니티 홈페이지를 다시 한 번 들어 가봤다. 역시나 게시판은 별 다를 것 없이 평소와 똑같은 내용의 글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와 있었다. 그렇게 손톱을 깨물며 페이지를 두 번째로 넘겼을 때 자신도 모르게 살갗을 주욱 뜯어버렸다. 올곧게 생겨먹은 그 일자의 상처에서 피가 난다. 따갑고 아프지만, A는 대수롭지 않게 휴지로 피를 스윽 닦아버리며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두 번째 페이지 네 번째 순서에 있던 글은 A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평소 많아봐야 한 게시물에 30개 정도의 댓글이 달리는 커뮤니티에 240개의 댓글은 A의 살갗을 더욱 쓰라리게 만들었다. 그 게시물을 누르자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웬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 동영상에는 적나라하게 오직 A만이 나왔다.

처음 A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별로 흥미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공부도 했으며, 놀이터에 나가 친구들과 미끄럼틀도 탔으며, 아버지에게 깜빡 속아 자신의 이빨을 뽑히기도 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성장했으며,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았다. 남들과 다르지 않던 A는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친한 친구들과 술을 먹을 때면 누군가의 흉을 봤으며, 흥이 달아오를 때면 자신이 경험했던 것이나 보았던 것, 혹은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음담패설을 주고받았다. 또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낄낄 거리기도 했고, 부러움과 시기 섞인 말들을 뱉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남들도 다 하는, 그런 행동이었다. 누가 과연 A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 와중에 A에게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욕구해소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욕구를 해소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욕구를 해소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A에게는 욕구는 해소의 대상이었다. 욕구로 가득 찬 자신의 상태를 다시 경건하게 만들어야 하는, 그런 해소의 대상이었다. 그 중 가장 처리하기 간단한 욕구는 성욕이었다. 성욕은 큰 비용이 요구되지 않았다. 다른 욕구처럼 돈이나 시간을 많이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니었다. 때때로는 상상을 가미해가며, 때때로는 살색 가득한 영상을 보며 자신의 성기를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가지고 노는 이 행위는, A의 성욕을 해소하기 충분했다.

성욕이 충분이 해소됐다한들, A에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A의 욕구해소는 점점 더 A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A가 시들어졌다. 이러한 행위로 인한 욕구해소는 만족감을 점차 결여시키고, 이는 자극적인 행위를 시작하게 한다. 이는 모든 인간들, 아니 모든 생물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담배나 마약 따위가 그러하듯, 우리는 그것들을 끊을 수 없다. 그것을 끊기 위해서는 굳은 결심이나 의지가 필요할 터인데, 현대인에게 과연 그러한 것들이 남아있을까? 과거에 비해 과할 정도로 우리는 많은 인간관계의 울타리를 치고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에게 깊은 우울감과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또한 많은 물적 풍요와 지적 충만감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허덕인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우리의 영혼을 달래주는 저것들을 끊을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결심과 의지를 갖는 것들이 더욱 ‘비정상적’이고, ‘비현대적’이지 않을까.

현대인에게 금욕이란 너무도 가혹한 처벌이다. A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나친 자극은 일상을 파괴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지나친 A를 흔들어놓아 절제할 수 없다 한들, 그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A는 더 이상 연출된 영상이나 사진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현실과 결부되지 않은 것 같았고, 자신을 흥분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방에 산적해있는 것이 매우 현실적인 영상이 아닌가. 조금만 품을 팔아 돌아다니면 쉽게 나오는 그것들. 쉽게 다운을 받을 수도, 바로 영상을 틀수도 있는 그런 사이트들 말이다. 행복이 욕구의 해소를 뜻한다면, A는 정말 행복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인물들이 호기로운 눈빛들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당신을 지긋이 쳐다보고 그들의 끈적한 소리들이 귀를 정복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니까. 그러나 A의 주변은 달랐다. A의 방 안은 역겹고 거북한 냄새로 가득 찼다. 토사물들이 온 방에 가득한 것처럼 말이다. 상관없었다. 누구나 이러고 사니까, 아니 이러고 살아야 하니까. 토사물들도 결국 자신의 일부이자, 자신을 대변하니까.

A는 어김없이 하루를 버텨갔다. 가방을 챙기고 밖을 나서면 군중속의 한 인간이 된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하루의 활기를 억지로 불어넣는다.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서 A가 엘레베이터를 기다릴 때 즈음, A의 옆에 낯선 사람이 옆에 섰다. 이 건물의 이방인인가, 아니면 눈에 띄지 않았던 토착민인가하는 고민 끝에 며칠 전 자신의 옆집에 이사 온 사람인 걸 직감했다. 엘레베이터가 도착하고 둘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놓이어져 있었지만 적막만 흐를 뿐이다.

적막 속에서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했고, 각자의 고립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오롯이 자신의 공간인 곳에 도착하자 마치 경건한 의식을 행하듯, A는 샤워를 시작했다. 물을 잠시 끄고 샴푸를 머리에 짜던 중 콧노래가 들려왔다, 아주 잠시 당황했지만, 곧 범인을 찾았다. 아까 그 사람이다. 이사 온 이후로 공교롭게 단 한 번도 샤워시간이 같았던 적이 없어 처음 듣는 콧노래였지만, 분명 그 사람이다. 헛웃음을 치면 역시 그 사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샤워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알 수 없는 묘한 동질감과 함께 잠에 들었다. 이상하게 욕구를 해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편하게 말이다.

삼일쯤의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고, 언젠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누군가 옆에 나타났다. 또 그 사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겠지만 그때 느꼈던 동질감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며 A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괴팍한 변태처럼 느껴진 탓일까.
“괜찮으세요?”
그 사람이 걱정의 눈초리 반, 경멸의 눈초리 반을 섞어 A에게 보내며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A는 그 눈초리가 퍽 신경 쓰여 대답했을 뿐이다. 그 어떤 의도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럼 다행이고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다정해 보이는 이 말들은 사포처럼 A의 자존심을 긁어 버렸다. 마치 자신이 절반정도 파악당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듯 고요한 신경전은 끝이 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후, A는 무언가 응어리 진 자신의 감정을 해소해야만 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조적인 감정이었을까. 껄끄러운 감정을 뒤로 하고 A는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지를 벗고 습관처럼 욕구를 해소했다. 어제의 그 묘한 동질감에 취해 이 좋은 것을 건너뛴 자신을 원망했다. 오늘도 영문도 모른 채 출연한 영상 속의 사람들은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했다. 매번 이런 식이다. A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더 정확히는 무지의 상태로- 자신의 행위를 끝낼 뿐이었다. 오늘따라 손끝의 점액이 더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