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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와 앵무새 죽이기에 이어서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게 되었다. 세 작품 모두 기독교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하는데,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좀 더 직접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드미트리의 친부살해 누명을 중심으로 하는 메인 플롯이 존재한다. 그리고 메인 플롯과 큰 연관은 없지만,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서브 플롯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반의 대심판관 이야기, 조슈마 장로의 생애전, 알료사와 스네기료프 가족 이야기 등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기독교에 대한 자기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기 위해 이 서브플롯들을 사용했다.
이반의 대심판관 이야기, 조슈마 장로의 생애전, 알료사와 스네기료프 가족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가 생각했던 기독교의 모순과 그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정말 진부하지만 감동적인 설교인 것이다. 나 역시 모태신앙으로 초등학교 때까지 교회에 다녔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느꼈던 기독교의 모순과 윤리의 당위성을 도스토옙스키가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잘 표현한 것 같다.
이반의 대심판관 이야기를 통해서 기독교의 모순을 꼬집고 비판한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죄 없는 어린아이가 고통 받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예정인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흉악범이라도 우리는 기독교도로서 용서를 해야 하는가. 그놈이 용서 받아서 천국에 가야 하는가. 마녀사냥을 비롯해 기독교인들이 한 행동을 보자. 등등 이반은 이성을 통해 기독교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비판한다.
1800년대 중반 러시아는 혼란스러운 듯하다. 그동안 러시아에서 기독교는 신비주의적이든 어쨌든 기독교적 명예와 양심으로 윤리를 담당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할수록 기독교는 부정당하고,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리마조프처럼 아들들에게 살해당했다. 기독교는 부정당했지만, 기독교적 명예와 양심을 대체할 수 있는 윤리는 아직 덜 발달한 것 같다. 물론 사법체계는 있지만, 사법체계는 드미트리의 말처럼 명예도 양심도 없다. 심지어 진실도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반을 통해 기독교를 비판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법체계나 의학 심리학 역시 비판했다. 의사 세명이 드미트리가 법원에 입장할 때 어디를 바라보고 있냐로 정신상태을 감정하는 건 얼마나 우스운가. 진실을 알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 검사의 심리조사는 터무니없다. 사법체계안에서 드미트리의 판결은 우리 저명한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무죄, 유죄더라도 정상참작이 되어야 하지만 배심원인 촌놈들이 고집을 부려 유죄가 나오고 오심이 된다. 기독교도 못 믿겠다. 유럽에서 수입된 학문도 아직 못 미덥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도스토옙스키가 소설에서 반복해서 쓰는 단어들을 고찰해보자.
리얼리스트
조슈마 장로가 죽자 내심 수도원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은 기적을 원한다. 그런데 조슈마 장로의 시체에서 냄새가 나자 사람들은 온갖 모독과 모욕을 한다. 알료사 역시 큰 충격을 받고 그루셴카를 만나러 가는 등 일탈을 감행한다. 기독교는 신비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온 인류를 위해서 이상을 위해서 죽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이것은 자신의 명예와 업적을 위한 것일 뿐이다. 현실적인 노동 봉사는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라키친은 농노제를 비판하고 대단한 사상을 지껄인다고 하지만 현실적인 행동으로는 친구를 돈에 팔아먹고 가쉽지에 상대방을 거짓 비방하는 놈이다.
비열할지언정 리얼리스트로 현실을 살아가는 드미트리는 한편으로는 기독교적 양심과 명예를 동경하며 참회에 기회가 있다.
반면에 현실과 동떨어져 이성만을 중시하던 이반은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열섬망에 걸렸다.
신이 없다면 만들기라도 해야 된다.
이것 역시 진부하다면 진부한 이야기다. 이반의 말에 따르면 신이 없다면 당위적인 윤리도 없고 선도 없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반은 기독교는 믿지 못하지만 당위적인 윤리와 선은 갈구한다. 애초에 이반이 기독교를 비판한 이유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왜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고통받게 내버려 두냐는 것이었다. 신이 없다면 당위적인 윤리도 선도 없고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이반은 당위적인 윤리와 선을 갈구한다. 대우법으로 이반의 말을 따지면, 당위적인 윤리와 선이 있다면 따라서 신도 있어야 한다. 이반은 스메르쟈코프가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윤리와 선의 부재 속에서 부친을 살해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반은 충격을 받고 모순 속에서 열섬망에 걸린다. 비열할지언정 기독교적 명예와 양심을 버려서는 안된다.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모순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은 악하고 추잡하지만 그래도 갱생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말에 따라 친부를 살해한 스메르쟈코프는 자살을 했다. 참회도 구원도 없다. 신이 없다면 만들기라도 해야 된다.
밀 한 알이 있으면 그대로 있지만 썩으면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앞서 말했듯 신비주의나 기적, 제도나 사상 같은 것에 경도되지 말고 리얼리스트로서 현실에서 행동해야 한다. 또 기독교적 명예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독교도로 살아 가야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인가?
이반의 대심판관 이야기로 기독교의 모순을 꼬집고 비판했다면, 우리는 조슈마 장로의 생애전과 알료사와 스네기료프 가족이야기로 기독교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수 있다. 조슈마와 알료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서로가 이어져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조슈마의 형이 가족과 하인들과 새들에게까지 사과를 하면서 이를 깨닫는다, 조슈마가 문득 자기가 때린 당번병을 생각하며 자기가 당번병보다 나을 것 없는 죄인이란 것을 깨닫는다. 알료사도 신비주의에 경도되어 있었지만 조슈마 장로의 관이 있는 곳에 돌아와 기도하다 불현듯 깨달음을 얻고 만물을 대지를 모든 것을 위해 빌어주겠다며 대지를 끌어안았다.-
서로가 죄인이기에 그 사람 앞에서 자신을 기꺼이 낮춘다. -조슈마 장로는 자기 하인같은 당번병에게 몸을 엎드려 사과를 하고 나중에는 친구가 되었다. 조슈마 장로는 불행한 일이 있을 것을 예감하고 드미트리 앞에서 이마를 맞닫게 절을 했다. 알료샤 역시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 언제나 진심을 다했다.-
현실에서 양파 하나라도 줄 수 있는 선행을 하면 된다. -알료사는 카챠를 모욕한 그루센카조차 불쌍히 여겨 위로를 해주었다. 알료사는 어린아이들을 설득해 일류사 집에 문병을 가게 하였다. 알료사에 감동을 받은 아이들은 개를 찾고 장난감을 주는등 일류사를 위로해주었다. 알료사가 바위 앞에서 우리가 선한 마음으로 선행을 했고 그 마음을 가졌음을 잊지 말자고 했다.-
선행을 할 때 밀 하나가 썩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선행은 다른 사람을 통해 이어진다. -조슈마의 형에서 조슈마에게, 조슈마에서 알료사에게, 알료사에서 콜랴에게-
우리가 사상이니 이성이니 기적이니 하는 것들을 고립된 채로 생각만 하지 말고, 서로가 이어져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죄인이란 것을 깨닫고, 자기를 낮추고, 현실 속에서 자그마한 선행이라도 하며, 그 선행이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파될 때에, 천국은 지금 이곳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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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눈물나려하네 카라마 읽을때 감동한게 생각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