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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겐 시랑 리뷰 쪽은 아직 안 읽었고, 소설도 정지돈 단편 실린 것만 읽었지만 어쨌건 커버스토리는 읽었으니…


사실 존나게 새삼스럽지도 않은 “문학에 있어 정치적 올바름이란”이라는 소재를 갖다 쓴 거야 좀 진부하다고, 어쩌면 문예지에서 논할 담론으로는 좀 늦었다고 생각함. 못해도 2019년에 언급될 놈이니까. 이미 정치적 올바름 자체는 예술가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생각함. 이미 정치가의 문제로 넘어갔음.


그런데도 이걸 이제서야 언급하는 것과, 그마저도 국내 작가의 작품이 아닌 일본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일몰의 저편’을 통해서 말한다는 점이 더더욱 개탄스러움.


국내에는 문제작이 하나 없었나? 대중들이 가끔 혀를 차며 하는 한탄도 이젠 문예지를 만드는 당사자들도 공감하는 일이 된건가? 싶기도 해서.


나는 저 소설을 안 읽었지만, 대충 언급되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모든 문학이 정치적으로 올바라야 하는 시대”에 온갖 이상성욕으로 점철된 야설을 쓴 작가가 무슨 윤리위원회의 소환 하에 수용소에 갇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품”을 쓰는 것을 강요하는 모습에 대한 뭐시기뭐시기


로 볼 수 있을 것 같음.


뭐 당연히 여러 의견이 나옴. 글을 기고한 어느 평론가는 소설이 던지고자 하는 메세지에 적극적 동의까진 안 하더라도 공감까지는 하고, 또 누군가는 헤이트스피치 금지법과 같은 일본의 현황을 언급하면서 결론적으론 “증오 발언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소설의 의제에 동의하긴 어렵다”라고도 하고.


뭐 원래 이런 류의 소재는 결국 성급한 일반화와 피장파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모든 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는 점임’


한국 사회에서 엄벌주의가 유독 강한 지지를 얻는 그 배경에 대해서, 그리고 이것이 일본 사회와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며 이로 인해 시민사회의 자가검열이 또 얼마나 달라지느냐를 말하지 않았음.


결국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이 심한 건 이거라고 생각함. 한국 사회 특유의 엄벌주의적 분위기에서 해당 소설과 같이 자가검열이 법제화될 경우에 어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가?


이런 걸 염두에 두고 주장을 전개했어야 한다고 봄. 당장 법제화가 되지 않은 환경임에도 문단 자체의 자가검열이 실시된 결과가 지금의 페미니즘, 동성애로만 가득한 지면 아닌가?


문제는 이번 호에서는 거기까진 가지 않았다는 점임. 애초에 글 하나에 많은 지면을 할당하지도 않았단 것도 있겠다만.


그 점에서는 지금이나마 이러한 의제가 언급되는 건 반갑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한계점땜에 결국엔 피장파장과 일반화로 흘러갔다고 생각함. 


응 그거는 작가가 사회를 제대로 이해 못 한 거야~ 응 나름 맞말이야~ 이런 식으로.


뭐 읽어본 놈들 생각은 다르고, 내 생각은 이럴 뿐임.


이걸 제외하면 늘 그렇듯이 릿터는 배우 인터뷰가 제일 읽을 만하고, 잔나비 앨범 표지 그린 작가 데려와서 표지 그리게 한 덕분에 장식품으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


릿터가 저 두 개 아니면 솔직히 문동 창비 하위호환이기도 하지만.